다섯째 아이. 정말 다섯째 아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첫눈에 서로에 끌려 결혼을 하고, 그들이 원하는 집에서 여러 사람의 축복속에서 결혼을 한다. 그들은 많은 아이를 낳고 싶었고, 넓은 집에서 양쪽 가족들과 종종 함께 모여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길 꿈꾼다. 그런 두 사람에게 루크, 헬렌, 제인, 폴이 찾아온다. 6년동안 무려 4명의 아이가. 그들을 둘러싼 이들의 위태로움이 있긴했으나,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속에서 잘 지켜간다. 그러다 해리엇이 다섯번째 임신을 한다. 하지만 다섯번째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해리엇을 힘들게 하고, 그런 해리엇의 상태를 누구도 이해해주지 못하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 벤은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덩치도 크고, 생김새도 이상했고, 행동도 거칠었으며, 무엇보다 힘이 너무 강해 엄마인 해리엇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 였다.
그런 벤의 탄생으로 그들이 지켜왔던 가족의 틀이 점점 무너진다. 아이를 돌보던 해리엇의 엄마 도로시가 떠나고, 벤을 어쩌지 못하는 해리엇을 비난하며 몰리와 버크가 떠난다. 그들의 집에는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다. 부부는 더이상 아이를 갖는것을 두려워하고, 다른 형제 자매들은 벤을 두려워하고, 아빠인 데이비드는 외면한다. 엄마인 해리엇은 그를 어떻게든 품어보려 하면서도 가까이 가지 못한다. 누구도 벤을 가까이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아이들과 다른 아이라는 것도 인정하지 않는다. 벤 또한 부모를 따르지 못하고, 벤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외부인 존, 벤 자신을 친구로 받아준 데릭과 더 친해지는데..
이 스토리를 읽으며, 벤은 정말 “이상한”아이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책은 작가는 벤을 이상하다기보다 정말 기괴한 아이로 그린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 조금씩 이상한 면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 이상함이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이다. 그 세상을 어떻게 모두 이해할 수 있으랴. 각자 자기만의 이야기와 세상을 가진 아이들을 우리는 “남”들과 다르지 않게 키우려 한다. 보통의 아이로. 아니 그렇게 크길 바란다. 다만 그렇게 성장하지 않는다고 그 아이가 정말 ‘이상한’아이 일까.
발달이 조금 늦고,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그 아이가 두려운 존재일 수 있을까. 데이비드는 자신에게 자식은 넷뿐인것 처럼 행동하고, 해리엇은 벤을 두려워하면서도 그를 품어보려는 모성을 보이지만, 사실 모성은 아니다. 죄책감 일뿐. 모두가 벤의 다름을 해리엇의 잘못으로 몰아가기에 그녀는 그런 벤을 어떻게든 ‘보통’의 아이로 만들고 싶고, 그래서 다시 가족을 모이게하고 싶은 그녀의 욕심의 한 모습일 뿐이다.
책속에서 벤을 이해하는 사람은 해리엇과 데이비드가 꿈꾸는 가족의 개념 범위 안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타인이 보기에 한심해보이는 삶이지만, 벤을 두려워하지도 배척하지도 않는다. 벤을 그저 벤 그자체로 볼 뿐이다.
이 부분에서 문득 우리가 보통이라고 꿈꾸는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하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말하는 보통의 삶, 평범한 삶을 캔버스에 그림으로 그린다면 같은 그림이 나올 수 있을까?! 그럴수 없다면 각자가 꿈꾸는 ‘보통’은 더이상 보통이 아니지 않은가. 해리엇이 벤을 벤 그 자체로 받아줄 수 있었다면, 가족들이 다운증후군이였던 에이미를 에이미로 받아주었듯이 벤을 그리 봐주었다면. 이들은 이들이 원하던 가족을 이룰 수 있었을텐데.
우리는 우리의 삶속에서 우리와 다른 이들을 그 자체로 얼마나 포용할 수 있을까?! 작가는 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조차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는 인간의 얄팍함이 벤을 더 공포스러운 형상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해리엇이 생각하는 벤의 미래는 결국 벤이 아니라 해리엇이 만들어낸 악이지 않을까.
“아니, 그는 볼 수 없었다. 어쩌면 보기를 원치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요점이었다. 그 의사뿐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이번 경우가 얼마나 다른지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 p.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