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사는 동물들은 모두 태어나서 1년만 지나면 행복이나 여가의 의미를 모르게 됩니다.”
누구나 권장도서를 통해 한 번쯤 접해봤을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당시 스탈린정권의 독재를 비판하기 위해 쓰인 이 책은 이후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적 각성을 불러 일으켰다. 혁명이 성공했다는 영광에 취한 이들에게 혁명이 끝났다고 끝이 아니라 말하며, 이토록 위험하고도 강력한 이야기를 조지 오웰은 ‘우화’라는 익숙하고도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내며 권력과 독재, 그리고 노동과 자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 또한 이 책을 이번에 처음 읽은 것은 아니다. 세계명작을 읽어보겠다고 나름의 허세에 가득 차 있던 중학교 시절, 개중에 가장 얇은 책을 골랐고 그것이 <동물농장>이었다. 작품에 담긴 맥락을 거의 알지 못했던 당시의 나에겐 그저 평범한 우화였고, 나중에 전문가들의 해설을 보며 ‘이게 이러 의미였구나’라는 수동적 감상을 통해 작품을 이해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읽은 <동물농장>은 조금 달랐다. 그 전에는 중심인물이자 권력자였던 메이저와 스노볼, 나폴레옹의 이야기만 볼 수 있었다면, 이번에는 다른 동물들로 표현된 수많은 인간 군상들에 눈길이 갔다. 그 속에서 현실 속 인물을 대입해보기도하고,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과연 나는 이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일까, 내가 이 상황이라면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 권력에 복종하거나 저항하는 이들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같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저 우화일 뿐이었던 이 책이 세상을 살아가는 작은 실마리를 제공하는 안내서처럼 보인 순간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나의 눈길을 끈 것은 농장에서 도망친 말, 몰리였다. 모두가 자유와 노동이라는 거대 정치 담론만을 내세울 때, 몰리는 이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예속의 상징’이라 여겨진 리본과 각설탕을 찾아 인간세계로 돌아간다. 즉, 권력에 대한 찬반만을 논하던 장에서 완전히 이탈해 자신만의 제 3의 길을 찾아나선 것이다. 권력자들은 ‘인간의 노예’라며 비난하고 반대자들은 ‘고작 저런 걸로?’라며 비아냥거렸지만, 내가 본 몰리는 조금 달랐다. 모두가 구조적 문제에 천착해있는 시점에 나 자신의 행복을 찾아 떠나는 단 한 사람. 그리고 아마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얼마나 잘 담아내느냐가 민주주의의 본질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가가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사회주의자가 쓴 스탈린 비판 작품이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는 것은 아마 이런 지점들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가 점점 발전하고 고도화되면서 각자의 입장들도 정말 복잡다단해진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를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그 속에서 고독감을 느끼며 자신의 의견을 더욱 강하게 주장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나 혼자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정치인들의 필터링이 되지 않은 거친 발언들이 인기를 얻는 것도 여기서부터 기인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니 몰리의 용기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가, 새삼 깨닫게 된다. 모두가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다’며 정치적인 논쟁을 이어갈 때, 모두의 비난을 안고 자신의 행복을 찾아 떠날 수 있는 용기가 말이다. 물론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다. 하지만, 먹고 사는 것이 모든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노비를 ‘먹여주고 재워주는’ 대감들이 마냥 좋은 사람인 것만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작품의 서두에서 “행복이나 여가의 의미”를 말한 메이저 영감의 연설처럼, 인간에겐 먹고 사는 것 이상의 행복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행복은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쉽게 좌절된다.
먹고 사는 문제와 더 고도의 행복을 논하면 보통 “배고픈 소크라테스”와 “배부른 돼지”의 양자택일 문제로 이어진다. 하지만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될 수는 없을까. 남들이 이기적이라 말해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런 행복의 삶을 추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동물들이 권력자가 만든 선택지에서 찬성과 반대만을 논했다면, 울타리를 뛰어넘어 자신의 행복을 쫓았다. 우리도 몰리처럼 권력이 만든 답에서 뛰어넘은 행복을 찾아 떠나자. 그 울타리를 뛰어넘을 때 비로소, 우리도 성장하고 세상도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