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는 번듯한 중산층 가정인 타이론 가. 왕년에 유망 배우였고 현재는 중후한 외모의 부동산 부자인 아버지 타이론, 한때 피아니스트를 꿈꿨고 중년에도 아리따운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어머니 메리, 아버지의 재능을 이어받아 배우로 활동하는 장남 제이미, 감수성 풍부한 신문기자 차남 에드먼드.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기엔 어딘가 이상하다. 불안증세를 띄며 가족들의 무심한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메리, 지나치게 창백한 안색과 병약한 모습을 보이지만 여름 감기라 치부하며 병색을 감추는 에드먼드, 날 선 뾰족한 말을 서로에게 던지며 대립하는 타이론과 제이미. 극 초반부터 막까지 퇴장하지 않고 모두를 둘러싸는 안개처럼 그들 가족에겐 무언가 의도적으로 가려진 이야기가 숨어있다.-근데 그 비밀이 뭔지는 안알려드리겠습니다. 직접 읽을 때의 그 전율을 빼앗고 싶지 않다.
그들은 서로 증오한다. 제이미와 타이론은 줄곧 대립한다. 메리 또한 겉으로는 가족을 사랑하는체 하지만 에드먼드를 타락시킨 원흉으로 제이미를 증오하고, 찬란하고 순수했던 소녀 메리를 타이론이 망가뜨렸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때로 연민하고 동정한다. 제이미와 타이론은 취중에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히 하는 타이론을 두고, 에드먼드는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에드먼드와 술을 마시며 대화하는 타이론이 환히 켜져있던 불을 하나씩 끄며 자신의 과오를 인정한다. 그런데 문제는 불을 끈다는 점. 자꾸만 자신의 이야기를 어둠에, 안개에 가려지도록 하는 모습이 돋보인다. 연민과 동정, 공감은 실패하고 절망으로 가닿는다.
그들은 끝내 절망한다. “(기운 없이) 그래.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포기하는 것뿐이지…… 또다시.” (타이론) 그리고 포기한다.
서로 증오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가족이란 오랏줄에 얽매이는, 연민하다가도 스스로의 과오를 덮으며 냉소와 위악으로 날을 세우는, 그러다가 심야에 이르러 절망에 이르고 마는 타이론 가의 하룻밤이 정말로 비극적이었다.
끝까지 이들은 파멸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비극이다. 밤으로의 여로는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며 그들은 매번 같은 증오와 연민을 거듭하다 매번 같은 절망에 이르게 될 것이다. 결코 벗어나지 못한 채. 그것이 가족의 진정한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