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직전의 부부 미사코와 가나메. 이들은 각자의 바람을 용인한 채 겉으로만 부부행세를 한다. 이혼으로 인해 겪을 사회적 시선과 그 과정에서 서로 불편한 감정을 떠안기 싫다는 이유로 이들은 이혼을 차일피일 미루기만 한다.
P109. “아소는 또, 섣불리 약속을 하면, 그것 때문에 오히려 늘 ‘질리지는 않을까, 질리는 게 아닐까?’하는 기분이 들 게 틀림없고, 자기 성격으로는 분명히 그렇게 될 거라면서 그 점을 두려워하는 거예요. 그래서 서로 약속을 하지 않고 지금 이대로 함께 있는 것이 제일 좋아요. 자기 기분을 속박하지 않는 편이, 결국 영원히 계속되리라고.”
P123. 요컨대 남편도 아내도, 헤어진다면 자기가 버림받는 쪽이 되기를 바랐고, 둘 다 마음 편한 쪽이 되고자 했다. 그들은 어린애도 아니면서 무엇이 그렇게 괴로웠던 것일까.
<여뀌 먹는 벌레>를 읽기 시작했을 때, <치인의 사랑>과는 사뭇 다른 작풍이라 놀랐다. 자극적인 묘사가 많이 줄었고 그 대신 이혼 직전의 부부의 심리 묘사에 공을 들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서구 문물에 대한 동경도 엿보이지만 분라쿠, 교겐, 조루리와 같은 일본 전통 예술이 글에 등장하다 못해 비중이 꽤 있어서 ‘갑자기 이게 무슨 심경의 변화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작풍이 상당이 바뀌었다. 위의 전통 예술 같은 경우 각주에 상세히 소개가 되어 있어서 몰라도 책을 읽는데 큰 지장은 없지만,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있다면 조금 더 술술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들었다.
화자인 남편은 부부 관계가 소원해진 원인에 대해 동양적인 아내의 몸매에 관심이 생기지 않아서 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내 입장에선 그건 핑계일 뿐, 결국 본인의 무관심이 이들의 관계를 악화시킨 것처럼 보였다.
<치인의 사랑>처럼 읽는 재미가 있다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이혼에 대한 당시의 사회적 시선, 그로 인한 부부 간의 갈등 그리고 부부 관계에 대한 고찰 등 여러 면에서 생각해 볼 부분이 있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