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의 탄식> 인어라는 새로운 종족의 신비로움에 매료된 중국 청년이야기
<마술사> 현실인지 환상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환상적인 마술쇼
<금빛죽음> 자신만의 예술을 추구하기 위해 온몸을 바친 청년이야기
P29. 그런데 눈 안쪽은 또 달콤하고 서늘한 윤기를 품어서 깊고 깊은 영혼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영원’을 응시하는 듯한 숭엄한 빛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인간의 어떤 눈동자보다 유현하고 묘원한 훈영이 감돌고, 낭려하고도 애절한 요영이 번뜩였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습관적인 ‘미’를 훌쩍 뛰어넘는, 인간보다 신에 가까운 아름다움이 있는 것입니다.
P123. 이윽고 눈을 떠 방 한복판 탁자 위에서 금빛의 몸 그대로 얼음처럼 차가워진 오카무라의 사해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 집 고용 의사의 설명에 의하면, 금박으로 인해 온몸의 모공이 막혀 죽었을 것이라는 얘기였습니다. 보살도, 아라한도, 악귀도, 나찰도, 모두 금색 사체 아래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일부러 비슷한 주제로 작품을 엮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 단편집의 주제는 미의 추구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대상은 인어, 마술과 같이 어떤 특정 형태가 되기도 하고 예술 그 자체가 되기도 했다. 미의 추구라고 했지만 사실 각각의 주인공들이 보이는 건 추구를 넘어선 집착에 가깝다. 자신과 다른 존재에 대해 집착하거나, 마(魔)에 홀려 스스로 희생양이 되거나, 자신만의 예술을 고집하다가 스스로 예술품이 되어버리는 모습은 광기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서있던 이들은 끝내 아름다움에 미쳐 그곳에 자신의 몸을 던져버린다. 3자의 입장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스스로의 선택에 몸을 내맡긴 이들에게도 과연 비극일까?
개인적으로 <인어의 탄식>이 기억에 남았다. 미지의 존재가 지닌 아름다움을 몇 페이지에 걸쳐 다채롭고 풍부하게 묘사하는 걸 보고 이래서 다니자키, 다니자키 하는 거구나 싶었다. ‘아름답다’ 이 한마디를 이토록 다양한 단어로 묘사해낼 수 있는 것은 이 사람밖에 없지 않을까.
쏜살문고에서 나온 다니자키 선집을 읽을 때마다 감탄하는 건, 표지의 그림이 작품과 딱 맞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던 그림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아! 하고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데, 그럴 때마다 이것만큼 이 소설을 관통하는 표지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