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출간일 2018년 8월 3일

27. 소년

문신, 소년, 작은 왕국으로 이루어진 다니자키 단편집.
문신. 이상적인 발을 가진 여성에 집착하던 문신가의 눈에 든 한 소녀가 문신을 받고 난 후 매혹적인 여성으로서 다시 태어나게 된 이야기.
소년. 부잣집 도련님과 어울리게 된 소년이 점차 가학적인 놀이에 눈을 뜨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작은 왕국. 시골 학교로 부임한 선생님과 자기만의 규칙으로 반을 지배하게 된 전학생의 이야기.

P11. 그 여인의 발은 고귀한 살갗으로 이루어진 보석처럼 느껴졌다. 엄지에서 시작해서 새끼로 끝나는 가지런한 다섯 발가락의 섬세함, 에노시마 해변에서 캐낸 연한 선홍빛 조개에도 뒤치지 않을 발톱의 색감과 구슬과도 같은 발뒤꿈치의 완곡미, 그리고 바위 틈에서 새어 나오는 맑은 샘물이 항상 발치를 씻어 내고 있다고 착각할 만한 윤기.

첫 작품 <문신>을 읽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다니자키의 묘사는 ‘아름답다’보다 ‘매혹적이다’라는 단어가 잘 어울렸다. 평범한 단어들인데도 쉴 틈 없이 이어지는 단어들은 상상력을 자극하고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편 서술자의 은밀하고도 집요한 시선처리는 문장이 가진 매력을 극대화 시키기도 하지만 불쾌감을 느끼게 할 정도라 읽는 내내 불편함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소년>과 <작은 왕국>은 두 작품에 나오는 아이들을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전자는 아이들의 잔혹함과 가학적 성격이 순수함에 가려져 있었다면, 후자는 아이들의 지나친 순수함이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가를 볼 수 있었다. 순수함과 잔혹함의 경계에 선 아이들의 모습을 두 가지 측면(칭찬받고 싶다는 단순한 욕망이 어디까지 번질 수 있는가, 놀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아이들은 무슨 짓을 벌이는가)에서 볼 수 있다는 건 꽤 흥미로웠다.
다만 <소년> 같은 경우는 폭력적인 행동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읽기 힘들었다. 주의 문구가 하나쯤 필요하진 않았을까… <작은 왕국>의 경우 어른의 시선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만의 위계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이 묘미였다. 이해할 수 없는 것에서 나오는 두려움이란 이런 것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