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동안 나의 저녁을 책임진 소설 <산 자들>.
늦은 저녁, 방 안에 스민 스탠드의 주광색 불빛이 자아내는 감성과 책의 분위기가 아주 잘 어울렸던.
자르기, 버티기, 싸우기 총 3장에 나뉘어져 있는 10편의 단편들은 크게는 먹고 사는 문제, 작게는 ‘마포구 현수동’이라는 동네로 엮여있는 연작소설이다.
<자르기>에서는 계약직 직원과 상사간의 갈등, 구조조정, 파업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 장에서는 선과 악의 구도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어느 쪽의 잘잘못을 따질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이야기의 끄트머리에 가서는 결국엔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불가항력의 어떤 힘 앞에서 무력감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떻게든 자리를 찾아 흘러가는 우리들의 인생을 무심하게 바라보게 된다.
<싸우기>는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장이다. 특히 프랜차이즈 업계의 고충을 알 수 있었던 ‘현수동 빵집 삼국지는’ 읽는 내내 입에서 쓴맛이 났다. 남들이 보기엔 어엿한 가게의 주인이지만, 실상은 더 큰 주인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점주들의 고충이 잘 드러나있다. 재개발로 오갈데가 없어진 세입자들, 취업을 위해 재능과 열정을 기부하도록 강요당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보며, 자본주의 논리 앞에서 고통받는 자들은 언제나 가장 힘없는 자들이구나 싶었다.
<버티기>는 그런 무력감으로부터 어떻게든 두 다리 힘주고 버티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철저하게 을인 사람들, 그래서 저항이라도 해볼려 했지만 마음처럼 되지않는 현실, 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에 변화를 줄 기회를 기다리는 일말의 희망이 느껴진다.
작가가 소설을 통해 세상에 던지고 싶었던 메세지는 마지막 두 장에 함축되어있는듯 하다. 부조리 앞에서 침묵하지 말자고. 그래야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죄 없는 어린 생명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나는 되려 새들이 날 때 상당한 기쁨을 맛볼지도 모른다고 추측한다. 너무 어린 새나 늙은 새, 다친 새는 날 수 없다. 많은 새들이 날 수 있는 힘이 있지만, 실제로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때는 한정되어 있다. 놓칠 수도 있었던 잠재력을 깨닫고 목적에 맞게 쓴다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 아닐까?
p.378, <새들은 나는게 즐거울까?>
우리는 모두 나는 힘이 있다. 하지만 그 힘을 써야할 때 쓰지 않으면 날아본지가 언제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비둘기가 되어버린다. 우리에게 나는 힘은 옳고 그름을 분간하는 일이다. 날아야 할 기회가 왔을 때, 조금은 주저하더라도 결국은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가자고, 그렇게 다짐하게 된다.
기자 출신 작가다운 소설이었다. 직업병이라고나 할까, 인터뷰를 바탕으로 쓰여져 아주 사실적이고 디테일하다. 본인이 직접 겪지 않고서야 이렇게 치밀하고 예리할 수가 없다는 생각까지 든다. 너무 적나라하다는 평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소설이라는 장르적 허구의 힘을 빌려 현 시대를 가감없이 드러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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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로 쓰인 사진은 민준기 작가의 <상하이>라는 작품이다. 사진보다는 회화에 가까운 느낌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격자 무늬로 질감이 다르게 표현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신호를 기다리는 빨강, 파랑, 노랑 우비의 사람들, 젖은 노면으로 반사된 그들의 모습, 그리고 그 위에 무심한 듯 쓰여진 책의 제목 ‘산 자들’.
책을 펼치고 덮을 때 마다 묘하게 시선을 사로잡아 소설의 내용과 그림의 연관성이 궁금했던 표지. 작가의 말에서 언급해주어 작품 제목과 작가는 알아냈으나 표지로 실은 이유는 아직 미궁. 소설의 분위기와는 참 잘어울린다. 침울하고 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