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맛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뒤늦게 읽기 시작한 시리즈이지만, 왜 사람들이 그토록 소장욕구를 불태우는지 한 권 한 권 읽으면 읽을 수록 더 알 것 같다.
표지의 그림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소할텐데, 호주의 작가 게오르게 람베르트가 1924년 그린 <헤라>라는 작품이다. 작품명 그대로 20세기 초 독립적이고 현대적인 여성을 위해 잡지를 만들었던 화가,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이자 시드니 사교계의 명사였던 헤라 로버츠의 초상화이다. 생김새와 분위기가 소설 속의 주인공 키티가 떠오른다. 키티는 헤라처럼 진취적인 활동을 했던 여성은 아니었지만, 한 때 사교계에 화려하게 데뷔해 이름을 날렸던 점에서, 그리고 소설 전반을 통해 주체적인 여성으로 성장해나간다는 점에서 두 인물은 서로 닮았다.
책의 줄거리는 현대인들이 읽어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수 있는 모든 요소들이 들어있다. 불륜, 복수, 치정, 반전 등, 지금 당장 현대판으로 드라마를 만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만큼 세련되고 현대적이다. 이런 스토리 속에서도 작가는 주인공 ‘키티’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구성해 한 편의 성장소설을 완성해냈다.
키티는 이기적이고 속물스러운 여자였지만, 그런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올바른 길로 나아가기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점에서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어머니의 강압 속에서 도망치듯 결혼한 남자와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찾아온 강렬한 사랑은 무방비 상태의 그녀를 전멸시켰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게 만들었다. 도의를 저버린 그녀의 선택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지위와 신분, 남편의 경제력 등에 기대어 사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그 시대의 여성상을 생각해보면, 그녀는 가해자였던 동시에 피해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연민의 마음이 일기도 했다.
물론 복수심을 불태운 그녀의 남편 월터는 이 소설 속에서 가장 안타까운 인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끝끝내 그가 모든 것을 걸고 사랑했던, 여전히 사랑할지도 모를 그의 아내를 용서하지 못하고 죽었고, 죽음의 방식 또한 회피성이 강했다. 살아 생전 자신의 속마음을 조금 더 열렬히 표현했더라면, 그의 내면에 자리한 나약함과 연약함을 드러냈더라면, 키티는 그를 사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저 맞추어주기만 하는 것이 사랑은 아님을, 나 자신을 드러내고 깊은 내면에서 상대와 마주할 때에야 비로소 사랑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을 그가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싶다.
소설 중반 쯤, 워딩턴은 키티에게 이런 말을 한다. “도(道). 우리들 중 누구는 아편에서 그 ‘길’을 찾기도 하고 누구는 신에게서 찾고, 누구는 위스키에서, 누구는 사랑에서 그걸 찾죠. 모두 같은 길이면서도 아무 곳으로도 통하지 않아요.” 하지만 소설 끝에 키티는 이런 생각을 한다. “그녀가 저지른 잘못과 어리석은 짓들과 그녀가 겪은 불행이 아마도 완전히 헛된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제 희마하나마 가늠할 수 있는 그녀 앞에 놓인 그 길을 따라간다면, 친절하고 익살맞은 늙은 워딩턴이 아무 곳에도 이르지 않는다고 말하던 길이 아니라 수녀원의 친애하는 수녀들이 너무나 겸허히 따랐던 길, 평화로 이어지는 그 길을 간다면 말이다.”
영어 원문에서 ‘도’는 ‘Way’로 쓰였다. 인생은 겉으로 보기에는 제 각기의 모습을 가지고 누가 잘났네 못났네 하지만, 덮여있던 베일을 들추어 보면 결국 굽이치는 길을 흐르는 물과도 같다. 그러니 내 앞에 주어진 길을 따라 묵묵히 흘러가면 된다고, 작가는 동양의 사상을 빌어 이런 말을 하고싶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