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오위 작가의 <뇌우>. 주말 오후 할일 없이 도서관을 기웃거리다 있어보이는 제목과 중국작품이라는 사실에 이끌려 우연히 뽑아들어 훑어봤다. 벽면에 움푹 들어가 조촐하게나마 있는 벤치에 앉아서 한 20페이지쯤 봤던가, 나는 한치의 고민도 없이 바로 이 책을 대출해왔고 읽게되었다.
아침드라마만큼 흥미진진하고 막장적이었던 희곡이었다. 등장인물들 간에 얽히고 설킨 관계들이 뇌정지 올 정도로 복잡해서 인물관계도까지 그려가며 읽었다. 각자 개성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입체적인 캐릭터들 덕분에 읽으며 어지간히 진이 빠질법도 한 치정서사를 나로 하여금 끝까지 몰입해서 읽게 해줬다. 정말로 등장인물 중 루구이 빼고 거의 모두에게 몰입해서 읽었던 것 같다. 숨막히는 가부장제 밑에서 죽은듯 살며 진실된 사랑을 갈구하던 판이, 유약한 부잣집 자제로 방황하다 루쓰펑과 “반인륜”적 사랑을 하는 조우핑, 아무것도 모른 채 이상을 좇다 현실을 직시하고 좌절하는 소년 조우충, 혈기왕성한 운동가 루다하이, 끝까지 자기중심적, 위선적, 가부장적인 조우푸위안 등등… 돌아보면 몇몇은 도덕적으로 용인하고 공감할 수 없는 인물들이나, 그들에게마저도 어느새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이 『뇌우』는 정말 감탄스럽다.
운명은 아랑곳없이 쏟아지고 격정은 주체할 수 없이 폭발적이다. 『뇌우』의 결말은 격정적이고 운명적이었다. 사랑에 빠졌던 두 남녀가 하필 출생의 비밀을 안고 있었고, 그 사실이 공개되며 격정적으로 터지는 감정들, 그에 못이긴 루쓰펑과 조우충이 밖으로 내달렸다 쏟아지는 뇌우에 의해 전신주 수리를 다음 날로 미루어 놓았던 우연에, 감전되어 허탈하게 죽어버리는 결말은… 참으로 격정적이고, 운명적이고, “뇌우적”이었다.
그러나 격정은 운명을 조금 앞으로 끌어왔을 뿐이지, 그뿐이지 운명이 애초에 없었을 것은 아니다. 그것이 『뇌우』를 그저 치정극으로만 보아선 안될 이유이기도 할테다. 비극의 내막엔 1930년대 바스러져가는 중국 전통 봉건사회의 패악과 무르익어가는 혁명의 열기 사이 모순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 사실 잘은 모르겠다. ㅎㅎ. 어쨌든…
진짜진짜진짜 재밌었다. 자극적인 소재와 감성적이고 세심한 묘사. 내가 좋아할 수 밖에 없었기도 하다. ㅎㅎ. 작가인 차오위가 “내가 쓴 것은 한 편의 시였다.”하는 말마따나 극중 지문이 이렇게나 감성적일 수 있을까 연신 감탄했을 정도이니… 기억에 남는 묘사 하나 남겨보자면
그러나 과거의 기억이 거대한 쇠갈고리처럼 그의 마음을 붙잡고서, 시도 때도 없이, 특히 조우판이 앞에서, 한 점 한 점 마음을 에는 고통을 느끼게 한다. 그것이 그가 이곳(끝없이 악몽을 떠오르게 하는 이 집)을 떠나 어디든 가려고 하는 이유이다.
『뇌우』 지문 중 조우핑에 대한 묘사부분
이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