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 / 다자이 오사무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문장이 아름다운 소설이다. 다자이 오사무 특유의 나약하고 섬세하면서 아름다운 문장들이 가득하다. 이전에 읽었던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과는 다르게 <사양>의 화자는 가즈코라는 여성이다. 혼란의 시대 속에서 뱃속 아이와 함께 꿋꿋이 살아남기로 하는 그녀의 의지도 감탄스러웠지만 나는 나오지에게 계속 마음이 갔다. 귀족으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이 아닌 나오지는 귀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자살하고 만다. 둘 중 어떤 길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읽으면서 수없이 마음이 흔들렸다.
전쟁이 끝나고 혼란스러운 일본, 화자 가즈코와 그의 동생 나오지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는 점점 몰락해가는 귀족이다. 아버지가 죽고 가세는 점점 기운다. 결국 그들은 도쿄의 저택을 떠나 한 산골의 산장으로 이사 오게 된다. 귀족이었던 그들은 일하는 법도 돈 버는 법도 알지 못한다. 하루하루 인생을 이어나가며 쌓여있던 재산을 축 낼뿐이다. 전쟁이 끝나고 민주주의 사상, 혁명의 사상이 물결처럼 밀려들어오는 시대에 귀족이라는 신분은 점점 사라져 간다. 이 소설은 귀족으로 태어나 살아온 세 명의 인물이 더 이상 귀족은 설 자리가 없는 전후의 일본에서 각각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여준다.
가즈코와 나오지의 어머니는 귀족으로 살다 죽기를 택한다. 마지막 귀부인의 모습으로 기품과 품위를 지키던 그녀는 돈벌이라는 현실의 문제에 부딪혀 산골의 작은 산장에서 폐렴에 걸려 숨을 거둔다. 나오지는 자신이 귀족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워 자살한다. 서민들의 노동으로 편하게 생활하던 귀족 신분이 부끄러웠던 나오지는 애써 서민들의 무리에 섞여 자신이 귀족임을 부정하려 하지만 귀족으로 자라나 살아온 그에게 완전한 서민의 생활은 본능적 거부를 불러일으킨다. 서민들도 나오지를 온전한 동류로 취급해주지 않고 우리와 다른 존재라는 선을 그어버린다. 그렇다고 고급 살롱에서 실생활과 전혀 관련 없는 예술 얘기들로 매일을 보내는 귀족의 생활로 되돌아가지도 못한다. 서민 계급 사람들과 어울리던 나오지는 어설프게 그들과 융화되었고 고급 살롱의 역겨운 고상함을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되고 만 것이다. 두 계급의 중간에 어설프게 자리해 그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한 그는 방탕한 생활로 괴로움을 잊으려 노력하다 자살하고 만다.
가즈코는 유일하게 살아남는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 그러나 유부남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그녀는 어떻게든 살아남기로 한다. 혼란스러운 시대, 아버지를 밝히 못해 사생아와 그 어머니로 불리게 될 상황에도 그녀는 뱃속 아이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는다.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난 것이다.”라는 그녀의 말처럼 그녀는 사랑을 위해 살아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사생아의 어머니로 불리게 될 가즈코. 그녀의 앞길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듯 험난한 역경이 가득할 것이다. 그러나 사생아와 그 어머니를 가로막는 낡은 도덕 따위는 가즈코에게 뛰어넘어야 할 벽일 뿐이다. 사랑하는 아이를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서 가즈코는 모든 역경을 뛰어넘어 살아남아야만 한다. 그녀는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났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나오지에게 가장 마음이 갔다. 방탕한 생활을 일삼던 그의 마음속 슬픔, 외로움, 고통은 나오지가 가즈코에게 남긴 마지막 유서에서 사정없이 독자를 난도질한다. 나오지가 귀족으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그는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소설 속 한 문장
누나.
나는 귀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