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시리게, 마음이 시리게 새겨진 문장들이 있다. 황정은 작가의 소설 『백의 그림자』에서 인물들은 사건을 맞는 게 아니라 살아가야 하는 시간과 그 아래에 있는 몇 가지 전제를 맞닥뜨린다. 마치 부끄러움과 혼란함 앞에서 두 가지 모두를 껴안는 게 응당 소설에서 자신이 할 일이라고 얘기하는 듯하다. 그만큼 조심스럽지만 진심에 면하고 있는 소설 속 인물들이(‘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왜인지 그립게 느껴진다. 우리가 그들의 그림자까지 모두 안아줄 수 있을까. 그럴 순 없을까. 그럴 수 있다 해도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지극한 태도로써 대할 수는 있다.
“먼 데서 찌이, 하고 한꺼번에 매미들이 울자 계단 쪽에서 끄…… 하고 따라 울었다.”
멀어진 몸을, 가닿고 싶어 하는 진심의 나약함과 끈질김을 이렇게도 글과 마음이 서로 밀접하게 표현한다. 그림자가 붙어있는 몸뚱이는 슬픔을 말하지 않아도 얼마간 슬픔 그 자체로 존재한다. 이런 몸이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사정인 걸까 (…) 너무 숱한 것일 뿐, 그게 그다지 자연스럽지는 않은 일이었다고 하면, 본래 허망하다고 하는 것보다 더욱 허망한 일이 아니었을까 (…)”. 무재의 말은 각자 삶의 조건 아래 어떠한 종류의 죽음을 ‘자연스러움’의 이데올로기에서 끄집어내어 독대하는, 그렇기에 진실한 공동空洞 속의 공명이 된다.
“(…) 늘 빠지기 쉬운 함정은 자연스럽게의 이데올로기다. 자연스러운 것은 자연이어서가 아니라 습관이어서 자연스럽다…” 황현산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P.177
관습과 인습에서 벗어나 삶을 응시하는 무재와 은교는 마음에 없는 것을 말하는 법이 없다. 알 수 없는 것에 침묵하고, 그렇다고 결코 변명의 세계에서 안온하게 머무르지도 않는다. 그들이 신중하게 고르고 입 밖으로 뱉어내는 말은 그 자체로 태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