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은 시대를 초월한다고 했던가, 전후 세대 작가들을 나열할 때 김승옥의 이름을 올리는 것이 내겐 어색하게만 생각된다.
무진기행, 생명연습, 서울 1964년 겨울 등에서 쓰인 우리 말은 21세기 출생 독자의 시선으로 보아도 지나치게 세련되고 우아한 느낌마저 든다.
김승옥의 능력은 비단 문장력에서 그치지 않는다.
재치, 유머러스함, 시대를 관통하는 풍자 능력은 감히 문학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서울 1964년 겨울의 발췌본을 고등학교 문제집에서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소설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했던 파트가 통째로 삭제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한데, 술집에서 만난 안과 나(화자)가 무의미한 대화를 주고 받으며 권태를 달래는 대목이다. 쓸쓸한 64년의 서울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대표작인 무진기행도 현대인의 감수성을 반영한 수작 중 하나이다. 그러나 소설 내에 등장하는 남성주의적 가치관의 횡포와 그 맹목적인 표현에 반감을 갖는 독자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작품과 작가의 관계를 떼어놓고 말하는 건 역시 어렵다. 시대는 급변하고, 도덕과 가치들은 흥망과 성쇠를 반복한다. 여기서 도덕적 판단을 내릴 생각은 없다. 이런 생각을 품는다는 것 자체가 근 50년의 세월동안 우리 사회가 어떤 식으로든 성숙했다는 증거라고 믿고 싶다.
그럼에도 김승옥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소중한 작가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