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일 2011년 3월 18일

드디어 읽었다. 그 유명한 이방인을.

 

뫼르소는 굉장히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비현실적이고, 그래서 답답한 인물이다.

뫼르소가 느끼는 감정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도 슬픔보다는 피곤함이나 귀찮음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상대를 욕망하면서도 결국 사랑은 아무 의미 없고, 결혼 역시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가끔 이 정도로 본인의 감정에 무던하다면 인생이 과연 재미있을 것인지, 혹은 그 역시 뫼르소에게는 큰 의미 없는 것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대목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 역시 무한히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점차 감정을 잃어가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뫼르소의 무던함은 크게 이상하거나 독특하게 다가오진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뫼르소는 현실적인 인물이다.

비현실적인 점은, 우리는 비록 ‘영혼이 없을’ 지라도 감정을 표현하면서 산다는 것이다. 크게 슬프지 않더라도 장례식장에서는 눈물 한 방울 정도는 훔쳐야 할 것 같다. 아주 안타까운 것이 아니더라도 부모를 잃은 친구에게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인데..’ 정도의 위로는 해야 할 것 같다. 결혼이나 사랑에 큰 의미를 두지 않더라도 연인을 위해서라면 그게 마치 큰일인 양 반응을 해줘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뫼르소는 그렇지 않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조금도 꾸며내지 않고, 결국 그 결과로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는 자신이 느낀 바를 솔직하게 표현했기 때문에 어딘가 사회에 어울리지 못하고 부유하는 이방인이 되고, 사회에서 추방해야 할 위험한 사람이 된다.

 

처음에는 뫼르소가 일상의 평범함 혹은 피로에 파묻혀 자신의 감정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실은 감정을 느끼지만, 거기에 신경 쓸 에너지조차 없는 사람. 나는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의 대부분은 이 경우에 해당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뫼르소의 감정적 무던함에는 어쩐지 능동적인 부분이 있다. 그는 어떤 순간순간의 감정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실제로 고민을 한 후에 대답한다. 어쩌면 상대방이 원하는 대답을 그냥 해주는 것이 자신의 감정을 대하는 더 수동적인 태도일 수도 있겠다. 뫼르소의 감정이 늘 메말라 있는 것도 아니다. 감옥에 갇혀 구역질하는 순간이나, 자신을 위해 변호를 하러 온 친구를 안아주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사제에게 분노에 차서 소리를 지르는 순간. 그는 온전히 감정을 느끼고 (상황의 제약이 없다면)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다만 느껴지지 않는 감정이나 상황을 꾸며내지 않을 뿐이다.

 

이는 솔직하지만 가끔은 보는 사람을 답답하게 만든다.

이방인에 대한 다른 리뷰를 조금 읽어봤다. 대체로는 뫼르소를 세상에 자신을 맞추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이라 표현했고, 그래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글들이 많았다. 그런데 나는 잘 모르겠다. 필요치 않은 살인을 저지른 것이나 별로 친하지도 않은 이웃이 그의 전 애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도록 편지를 써서 돕는 것이나 솔직히 윤리적인 행동은 아니다. 살인의 이유가 ‘햇빛’이라는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닐 수는 있겠으나 그리 합당하지는 않다.

그는 본인이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고 이에 맞추어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자신이 왜 그러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성찰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감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뫼르소가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는 말들은 가끔 자기방어적이다. 이게 과연 자유로운 인간의 모습인가 의문이 든다.

 

그래서 뫼르소는 계속해서 이방인일 것이다. 그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매력적일 수 있지만 바로 그 점때문에 가까이하기 꺼려지는 인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