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제국 시대의 무슬림-기독교인 관계

터키 여행 시 마중 나온 가이드는 한국인이었다.

 

터키의 유명한 유적지를 여행하던 중 들려오는 소리, 모든 것이 일순간 멈춘듯한 그 광경은 어쩌면 도시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던 우리들 모습에 익숙한 탓도 있었지만 외국이란 곳에서 겪는 신기한 모습처럼 보인 것도 사실이었다.

 

기도시간, 이른 아침부터 호텔 밖에서 들려오는 이맘의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특유의 기도 음악은 터키라는 나라의 이미지를 뚜렷하게 각인시켰다.

 

그러던 중 기독교인들이 숨어 살던 유적지를 관광하던 중 가이드 말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은 기독교인으로서 이곳에 살고 있지만 이곳에서의 기독교인으로 선교 활동에 대한 제약이 있는데, 이는 터키라는 나라의 고유의 특성 안에서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는 생활의 한 일부분, 타 종교를 믿어도 되지만 이슬람 종교에 대해 개종을 권유하거나 활동하는 것은 불허하는 것이 터키의 방침이라는 말에 이색적으로 받아들였던 기억이 난다.

 

이미 익숙한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분쟁, 알고 보면 종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평화와 사랑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지금도 현재 곳곳에서 터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정치를 배제한 역사를 통해 그들이 살아왔던 시대를 통해 두 종교 간의 대립의 원인을 찾아보고자 한다.

 

아나톨리아 변방의 여러 부족 가운데 오스만이란 부족이 힘을 키우면서 점차 세력을 넓히더니 오스만 제국을 세웠다.

그들은 처음 정복을 하면서 이미 아나톨리아 부근과 비잔티움에 살고 있던 가톨릭 종교를 갖고 있던 지역을 정복하면서도 먼저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는 지역으로 발칸반도에 집중한다.

 

 

발칸반도의 흩어져 살고 있던 기독교인들을 무슬림이란 제국으로 흡수하기가 더 쉬웠고 그들이 갖고 있던 종교를 허용하면서도 이미 기초를 다진 그들의 생활권을 존중하는 정책을 실시한다.

 

특히 종교별로 특성에 맞는 관용의 정책, 정교회의 수장의 권리를 인정하고 이스탄불에 집중하게 한 정책, 그 외에 아르메니아인들의 종교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정책들은 오스만 제국 안에서 평화로운 ‘고전시대’라 불린 시대를 관통하면서 안정을 찾는다.

 

흥이 있으면 쇠퇴가 있는 법, 이슬람 경건주의 종교 운동이라고 불리는 카드자델리 운동을 통해 기존의 기독교인들에 대한 정책은 변화를 꾀하게 되고 이는 그때까지 유대인들이 차지했던 권리를 그리스인 엘리트 집단인 파니리오트에게 넘겨주는 결과를 낳는다.

 

하지만 결정적인 쇠퇴의 시작은 러시아의 영토 침략에 따른 전쟁의 참패로 인한 퀴췩카이나르 조약이다.

 

 

–  유럽 제국주의가 끼친 오스만 제국 안의 무슬림과 기독교 간의 갈등

 

 

퀴췩카이나르 조약으로 인한 서구 열강들의 비무슬림에 대한 권위와 권리 주장 확대, 이런 가운데 점차 무슬림들은 제2인자로 물러나는 불안의 정세, 비 무슬림과의 경제적인 격차들은 세르비아, 그리스 독립 전쟁을 통해 기독교인들이 행한 배반의 행동들을 통해 그들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를 준다.

 

열강들의 내정간섭에 해당되는 갖가지 조건들, 안으로는 메흐메드 알리와의 대결에서 벌어진 시리아 내의 문제점들 이후 탄지마트를 실시하게 된다.

 

재구성이란 의미를 갖는 탄지마트는 서구식 제도와 국가 기틀을 새롭게 마련하려는 것에 주안을 두었지만 이마저도 중앙집권화에 실패한다.

오스만 입장에서는 러시아를 견제해야 했기에 영국과 프랑스와 손을 맺을 수밖에 없었고 이러는 과정에서 오는 통역을 맡은 이들은 기독교인들이 맡았다.

 

이들은 자신들의 장점을 이용해 면세 특권과 카피툴레이션의 획득을 취했고 이런 불공정한 일련의 일들이 쌓이면서 기독교인들을 바라보는 무슬림들의 시선이 좋을 리는 없었다.

 

 

그렇지만 가장 최악은 기독교의 선교활동이다.

 

 

기존의 가톨릭이 예전부터 익숙한 종교이자 오스만 제국이 행한 관용의 법칙 내에서 행해지던 개종의 의미가 그렇게 부담되지 않았고 개종을 권유하는 대상도 주교, 대주교 등 위선을 대상으로 한 점인 반면 기독교는 개인마다 찾아가면서 성서를 읽고 개인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었기에 기존의 토대에서 살아가는 기독교들 사이에서도 충돌이 있게 된다.

 

이후 이들이 시리아에 넘어가 선교활동을 하지만 무슬림을 개종하기엔 어렵다는 현실을 깨닫게 된다.

 

한편 탄지마트가 실시되는 가운데 서구의 문명을 배우고 익힌 신오스만 인들의 등장은 국내 기독교인들의 상업적 번영과 기존의 혜택의 영향 때문에 민간 사회를 분열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그들이 주장하는 근본적인 주장은 무슬림에게 정당한 지위, 권력을 돌려주라는 것, 이에 압튈하메드3세의 전제정치 실현은 서구 열강들과의  여러 정세가 겹치면서 무슬림들에겐 자칫 나라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겹치면서 아르메니아인들이 행한 행동으로 인해 대학살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몰락하기 시작한 오스만 제국은 결국 세브르 조약에 도장을 찍게 되면서 그 광활한 대륙이 영국과 프랑스에 넘겨지고 무스타파 케말 파샤의 공화국으로 탄생을 이어나가게 된다.

 

많은 왕조들의 이야기 속엔 담지 못한 많은 부분들이 있지만 종교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각국의 대립들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특히 무슬림과 기도교 간의 대립은 그들이 왜 기독교를 대표하는 서구에 반감을 가지게 되었는지, 자살테러와 극대치의 혐오를 느끼게 하는 행동들을 왜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질 때 우선 이들이 오랜 시간 동안 겪은 ‘역사’속에 함께 한 모습들을 통해 들여다봐야 할 중요성을 깨닫게 해 준 책이다.

 

케말이 이슬람의 전제정치를 버리고 서구에서 받아들인 국가 건설에 힘을 쏟는 과정에서도 세속주의와 종교의 분리를 통해 새롭게 거듭난 공화국으로써의 건국에 힘을 쏟았는지는 엘리트 집단들이 겪고 보고 배운 시대의 필요성이 요구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슬람의 자국을 없애버리지 못한 채, 일부 정책에서 실현되지 못한 점도 있다는 것은 이들 무슬림이란 정체성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한다.

 

만일 열강 세력들의 입김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두 종교 간의 대립은 이처럼 극에 치닫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줄로 그어진 중동의 여러 나라들의 종교의 대립과 내적으로도 여전히 핍박을 받고 있는 소수 종교를 가진 자들의 애환, 독립 국가로서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암울함들이 이 시기 오스만의 몰락과 함께 결정적으로 이루어진 결과임을 볼 때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오스만 제국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벌어진 그라나다 공방전에서 패한 후 갈 곳을 잃었던 유대인들을 받아들였던 점들을 생각한다면 과거의 공존, 그리스와 인구 교환이 있을 때 그들이 취한 교환의 기준이 언어, 종족이 아닌 ‘종교‘란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열강의 점차 심해지는 간섭과 무슬림들이 자신들이 이룩한 정복의 땅들이 하나둘씩 독립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겪은 비참함, 끝까지 발칸반도를 포기하면서까지 아나톨리아만을 지키고자 했던 오스만 튀르크 인들의 가슴에 고양된 것은 바로 “무슬림으로서의 정체성”, “이슬람 정체성”점은 바로 이들의 그 자체였다는 점을 알게 해 준다.

 

 

세속주의자들이 이슬람이란 종교를 믿지 않거나 존경하지 않더라도  그들 안에 내적 된 터키 국민을 정의하는 정체성으로서 소속감은 지금도 유효하단 것을 알게 해 준다.

 

역사학자 마셜 호지슨에 따르면 역사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입장에 서 보는 것이 유용하다고 보았다고 한다.(책 내용 일부)

 

맞는 말이다.

누가 좋고 나쁘다는 것을 내리는 근거의 기준을 내리기에 앞서 근본적인 원인을 들여다볼 때 각기 다른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대립하고 있는 두 종교가 쌓아온 오랜 시간을 통해 보다 많은 갈등들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했다.

 

오스만 제국의 탄생부터 몰락, 공화국 탄생에 이르기까지 부침이 많았던 역사 속의 종교가 지닌 의미, 기존의 기독교의 시선에서 바라본 내용의 책들이 많았던 점에 비춰볼 때 무슬림으로서의 정체성, 이슬람이란 종교에 대한 관점을 역사 안에서 다룬 책이란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