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들을 다 좋아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내게 상처를 줬다. 끝까지 웃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 본문 9쪽 중에서
말을 더듬는, 싫어하는 단어 앞에서 그 첫음절을 입 밖으로 토해내지 못하는 열네 살 중학생 소년이 타인으로부터 “너 진짜 말 잘한다.”는 진심의 칭찬을 듣기까지 때론 회피하고 주저앉았다가 다시금 마주하고 행동하기도 하며 ‘감정의 긴 터널’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다.
자신에게 말 걸어주고, 친절한 모든 사람들을 좋아했지만 그것이 지속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상처로 돌아올 때 사람과 세상에 속았다는 증오로 변질되고 그 회의의 깊이는 더욱 깊어진다. 그래서 속으로 외친다. 자신을 향해 주문을 왼다. “나는 친절한 사람을 싫어하겠다.”고, “잘해 주는 사람을 미워하겠다.”고, 절대 “아무 것도 기대하지 마.”라고.
이보다 처절한 소외와 단절의 외침이 어디 있을까. 소년의 엄마는 “밝게 인사하며 전화기에 힘을 다 빼앗기고 집으로 돌아오는” 114교환원이다. 홀로 고투하며 말을 더듬는 아들이 유창하게 토해 내기를 기대하며 ‘스프링 언어 교정원’의 힘겨운 부담을 기꺼이 감수하는 여인이다. 그러나 그녀의 팍팍하고 고단한 삶이 아이가 기대하는 그런 엄마이기에는 결여를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소년의 마음의 소리를 들어 주지 못하는 엄마이지만 정작 교환원으로서 타인의 말을 살갑게 들어주는 그 의무적 일로서의 행위가 자신에게 향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문장은 괜스레 방향을 잃고 두근거리는 방황하는 가슴을 쥐어 잡게 한다.
소설 표제인 ‘내가 말하고 있잖아’ 라는 문장의 진의가 ‘제대로 귀 기울여 들어줘’라고 들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간절한 청으로 들리는 순간이다. 그래서 작품 대부분의 서사를 이루는 무대로서 ‘언어 교정원’은 들어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의 모임처럼 느껴진다. 이들에게는 한 달씩 사용할 이름이 가슴에 붙여지는데, 가장 말하기 힘겨워하는 단어가 이름이 되기에 그것은 그들이 겪는 고통의 상징어이자 곧 원인이다. 루트, 핑퐁, 피츠제럴드, 모티프, 처방전, 곰곰이, 24번…, 그리고 소년의 이름은 그의 중학교명인 무연에서 엄마, 우주… 그리고 용복이로 바뀌는데, 직면한 고통의 거처, 극복해야 할 상황이자 사건의 까닭이다.
“더듬는 모습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사람 앞에서는 더듬어. 노력하지 않아도 되니까.
더듬는 모습 그대로도 괜찮으니까.” – 본문 71쪽 중에서
엄마, 들어주길 기대하는 엄마는 날건달 옛 남자를 집으로 들이고 함께하기 시작한다. 소년은 원장의 제안으로 시작한 일기에 쓴다. ‘쓰레기’가 죽이고 싶도록 싫다고, 그리고 엄마도. 쓰레기가 뱉는 폭언과 무자비한 폭력이 두렵다. 더듬어 한 글자도 뱉어내지 못하는 자신에게 읽기를 시키곤 조롱하며 빈정대는 국어 선생이 밉다. 복수와 용서를 오가는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질 길이 없어 소년은 날이 밝도록 밤새 쓰고 또 쓴다.
자신을 죽이고 싶다고 쓴 소년의 일기를 훔쳐 본 쓰레기가 머리를 감싸 쥐고 경찰을 향해 피해자라며 소년을 피의자로 몰아대는 장면, 말을 더듬어 제대로 된 항변조차 하지 못하는 소년의 난감함, 무력하기만 한 엄마, 아마 소설 속 이 장면과 이어서 펼쳐지는 에피소드는 고조된 감정 탓으로 잠시 책 장을 덮어두게 한다. 휴~우, 142쪽이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다시금 책을 펼친다. 엄마였으면 하며 바라보던 교정원 동료인 이모를 비롯, 원장, 아르페지오, 24번… , 그들이 달려왔다. 들어주고, 아픔을 함께해 줄줄 아는 사람들, 이것이 사랑이 아니고 그 무엇이 사랑일까.
“문장을 바꾸면 사실이 달라진다. / 표현을 수정하면 감정이 나아진다. /
…. / 다음을 쓰면 미래는 생겨난다.” – 작가의 말, 162쪽 중에서
‘소년의 팔목과 목의 상처, 강하게 누른 멍, 찢긴 피부’에도 불구하고 피의자로 몰아대는 쓰레기의 주장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경찰의 조사태도가 전복 될 때, 정말 불순물이 쫙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 카타르시스를 제대로 느꼈다는 기분에 잠긴다. 아마 내겐 두고두고 기억 될 장면이 될 것 같다. 그리곤 소년은 “노트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글자를” 쓴다. “많은 사람으로 많은 감정을 느끼는” , 어지럽고 피곤하지만 좋고, 시원한 기분이 소년을 감싼다. 작가의 말처럼 꾸미고 지우고 바꿀 수 있는 이야기, 내 삶의 이야기는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소년과 언어교정원 그의 동료들을 응원하며, 한편으론 그들로부터 위안을 받으며 읽게 되는 쓸쓸하면서도 마음의 어떤 단단한 구석을 만나게 되는 그런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