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미지를 그려낼 힘이 부족해서라고 핑계를 댄다. 장편은 지루하다. 그런데 조해진의 장편소설 <단순한 진심>(민음사)은 읽고 싶어 안달낸 책이다. 할 일을 미루지 못해 시간이 없을 때는 읽고 싶어 뱃속이 간질간질했다.
그녀의 소설은 때론 시 같기도 하다. 읽다가 미처 기록하지 못한 문장을 찾아 하루치를 다시 되짚어 읽기도 했다. 그런데도 지루하지 않았다. “나는 걸음을 멈춘 채 세월이 손 때나 스크래치의 형태로 퇴적된 장롱과 화장대와 냉장고를 하염없이 건너다 보았다.”(100쪽) 이 문장을 찾아 하루를 허비했다. 그녀는 시를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
철로에서 기관사에게 발견되어 1년 정도 그의 집에서 지낸 후 프랑스로 입양된 문주(프랑스 이름 나나)는 독립영화 출연 제의을 받고 한국에 온다. 영화를 찍는 이들과 함께 자신의 과거를 찾고, 또 그녀가 무심코 만나게 되는 이들과 그들의 삶에서 감동을 전해주는 소설이다. 따뜻한 호의와, 생명, 용기, 그리움, 과거와 미래를 잇는 인생, 진심을 나누는 때, 행복을 경험하게 한다. 씩씩한 주인공들이 좋고, 따뜻한 이들의 마음이 좋다.
이 소설을 위해 조해진 작가가 만난 사람들과 자료들, 그리고 소설 속 인물들 간의 만남들을 보며 우리의 삶은 만남으로 이뤄져 간다는 것을 느낀다. 스쳐가는 만남 속에 눈여겨 본 작은 호의가 얼마나 큰 일을 이뤄내는지, 생명이라는 우주가 펼쳐지게 하는 힘을 주는지, 그리고 그 생명을 지키고 나의 우주를 지켜갈 책임이 내게 있음을 상기시킨다. 스쳐가는 잠깐의 만남도 환대하며 보낼 수 있기를. 그렇게 하지 못한 작은 만남에 늦은 후회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