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사로잡힌 한 영혼의 악마적 개성과 광기 어린 예술 편력.
이말에 너무나 공감하고 공감하는 <달과 6펜스>는 정말 무언가에 홀려 마치, 그림 그리다 죽은 귀신이 붙은 거마냥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예술가 찰스 스트릭랜드의 이야기다.
런던에서 증권 중개인 일을 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려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사십 대 찰스 스트릭랜드.
어느 날, 그는 돌연 가정을 버리고 파리로 가버린다. 한 마디 설명도 없이,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그는 파리의 낡은 호텔을 전전하며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지만 비정상적인 예술혼에 사로잡혀 자기 몸도 돌보지 않고 주위의 모든 것에 무관심한 채 살아간다. 이렇게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사람을 신은 괴씸히도 생각지 않나 보다. 한편 가난으로 병과 굶주림에서 구해준 친구이자 예술인 더크 스트리브는 스트릭랜드를 아낌없이 지원한다.
하지만 스트릭랜드는 은인과도 같은 더크에게 고마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에게 뻔뻔하게 굴고 배신을 한다. 심지어 자신을 사랑해서 남편까지 버리고 스트릭랜드를 따라간 더크 스트로브의 아내 블란치를 죽음에 이르게 해놓고도 죄책감은 전혀 느끼지 않는다.
스트릭랜드의 그림은 가장 대수롭지 않은 것조차 기이하고, 복잡하고, 고뇌에 가득 찬 개성을 보여준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살아 있을 때 이름 없는 화가였다. 그에게 친구보다 적이 많았고, 그의 생애에는 기이하고 끔찍한 일들이 많았고, 그의 성격에는 어딘가 난폭한 점이 있었고, 그의 운명에는 비통하게 여겨지는 일이 적지 않았다.
남들이 그의 그림을 보고 비웃거나 무시해도 그는 기가 죽거나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정말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그는 가난과 쓰라린 투쟁을 하며 살아간다. 끔찍한 일을 겪어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고, 일상의 안락에 철저히 무관심한 상태로 살아간다. 심지어 음식을 구하지 못했을 때에는 몇 달동안을 빵 한조각에 우유 한 병만 매일 먹고 지냈을 정도다.
궁핍을 고생이라 여기지 않는다.
오로지 정신적인 삶만을 사는 그였다. 돈이 다 떨어져도 당황하지 않는다. 푼돈이나마 벌고자 파리의 밤생활을 구경하고픈 사람들에게 안내인 노릇을 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림 그리기를 한 번도 중단한 일이 없었다. 온 힘을 다해 자신의 격렬한 개성을 캔버스에 쏟아붓는다. 이렇게 힘든 생활에도 다시 가족과 살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지금처럼 할 거냐는 물음에 일말의 고민도 없이 ‘물론이오’한다. 부인과 아이들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옛날이 그립지도 않다. 미안한 생각도 전혀 들지 않는다.
심지어 십칠 년동안 먹여살렸으니 이젠 아내 혼자 힘으로 살아보란다. 아이들 역시 남부럽지 않게 살아왔다며, 다 크고 나니 별 감정이 들지 않더란다.
몰인정도 이런 몰인정한 사람이 있을까.
스트릭랜드는 누구의 도움도 받고 싶어하지 않는다. 아니, 경멸한다. 돈이 떨어지면 알아서 벌었고 음식이 없으면 없는데로 살아갔다. 오히려 주위에서 도우려 달려 들었다. 아마도 더크와 블란치에게 죄책감이 없었던 것도 자신은 원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자진해서 도왔기 때문일 것이다. 철저히 자신의 가치관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비록 그 원시적 낙원이 그를 위험에 몰아간다 할지라도…
예술가들의 사상과 가치관을 전혀 짐작할 수 없지만, 억압적인 속세를 벗어나 오직 자기만의 가치관으로, 자기 내부의 충동대로 살아간 스트릭랜드의 뼈속까지 예술인의 흔적과 삶을 살았던 그를 과연 이해해야 하는지, 죽일놈이라 욕을 해줘야 하는지…ㅎㅎㅎ
모든 예술가들이 그러하진 않을 것이다.
아무리 예술혼이 씌었다 한들 한순간에 가족과 직장을 버린다는 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얼마든지 가족과 지내며 그림을 그리고 공부할 수도 있다. 가족을 왜 버렸냐는 질문에 그는 그저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소’라고 답한다.
철저히 자신을 가두고 예술가는 가난하다는 말처럼 가난이나 고통뿐만 아닌 세속 사회의 안락함도 철저히 무시한 채…
안락함 속에선 진정한 예술의 혼이 나올 수 없다는 것처럼…
그의 그림 솜씨는 천재성이 있을지언정 그의 성격은 비정상적이며 과히 쓰레기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래서 그의 가치관은 내가 다 이해하기엔 큰 모순덩어리가 많다.
<달과 6펜스>는 프랑스의 후기 인상파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했다. 저자는 오랫동안 폴 고갱을 소재로 소설을 쓰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고갱의 이야기기다라기 보단 저자의 마음속에 품고 있던 예술가에 대한 비전을 고갱이라는 소재를 빌려 창조해 낸 이야기란다.
고갱과 스트릭랜드의 삶 또한 유사한 것도 있지만 스트릭랜드의 삶이 훨씬 단순하고 비극적으로 그려졌다.
책은 끝날 때까지 달과 6펜스의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심히 궁금했던 차, 작품 해설에 답이 있더라는.
작품 해설을 꼭 읽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