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시점이 아니었으면 이 책을 펼쳐보지 않았을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시대를 읽는 것과 같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지금 시대를 이해한다.
그 시대나 지금 시대나 별 반 다르지 않은 인간들의 민낯을 눈으로 확인하고, 이해한다.
그리고 어느 시대에서든지 영웅은 반드시 있고, 그들은 대단한 권력을 쥔 자들이 아닌 우리 주위에서 마주치는 그들이었다.
알제리 해안에 면한 프랑스의 한 도청 소재지에 불과한 못생기고 메마른 도시 ‘오랑’에서 이 이야기는 시작이 된다. 오랑은 그저 평범한 도시의 일상 모습이었다는 말이다.
4월 16일, 그 일상적인 도시에서 의사 리유는 죽어 있는 쥐 한 마리를 발견한다.
이 연대기를 기록하고자 하는 중대한 사건의 첫 신호였다.
쥐 한 마리를 시작이 되어 비정상적으로 죽어가는 쥐를 발견한 리유는 불안해지고, 거리마다 기이하게 죽은 쥐들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28- 이 도시에서 매일같이 눈으로 보고 있는 광경의 분명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해 주는 그 숫자는 마음속의 혼란을 더욱 가중했다. 지금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그저 좀 불쾌한 사건이라고 투덜거리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는 아직 그 전모를 분명히 헤아릴 수도 없고 그 원인도 규명할 수 없는 형편인 그 현상에 어딘가 무시무시한 구석이 있어 보였다.
죽은 쥐들을 처리하던 수위의 갑작스런 몸의 증상들과 죽음이후 원인 불명의 열병은 걷잡을 수 없이 치닫으면서 사람들은 사태를 인지하게 되고 공포를 느끼기 시작한다.
심사숙고 하느라 시민들에게 제대로 행동조치를 발동하지 않는 행정 조치들과 책임감과 사명감이 없는 이들로 인해 그것은 나흘 동안 네 단계까지 상승세를 떨쳤고,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폐쇄하라’는 전보가 왔다.
“우리가 전에는 이런 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뿐이죠. 그렇지만 나는 흥미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그럼요, 단연 흥미 있는 일이지요.” (p.24)
– 그렇다, 저들도 이런 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겪은 적이 없었지만 지금 이 사태도 우리는 본 적도 겪은 적이 없다. 그러나 저들의 이야기처럼 이 일은 흥미로운 일은 아니다, 결코.
단지 이러한 일이 한 번도 없어 심각함과 우리에게 직면된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했을 때 우리는저들과 같이 보이는 문제를 흥미로운 일로 여길지도 모른다.
우리 나라에서 코로나가 우후죽순 늘어갈 때 전 세계가 취했던 행동들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한국만 막으면 전 세계는 문제없는 일이고, 그들은 아마도 우리의 문제를 멀리떨어져서 흥미롭게 보았을테니 말이다.
46- 아닌 게 아니라 푹푹 찌고 있었다. 그러나 열병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더위였다. 도시 전체가 열병을 앓고 있었다.
– 어떠한 사건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현실을 바로 보지 않으려 한다.
외면하는 것이 제일 쉽기 때문이다, 심신적으로 모든 것이 말이다.
이 열병은 푹푹 찌는 날씨에게 책임이 넘겨졌고,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싶어했다.
p.55- 어리석음은 언제나 악착같은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늘 자기 생각만 하고 있지 않는다면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시민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기네들 생각만 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휴머니스트들이었다.
p.71- ” (…) 병이 퍼지고 있는 추세로 보아서는 , 이 상태가 중지되지 않는 한 이 개월 내에 이 도시의 반수가 생명을 잃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페스트라 부르건 지혜열이라 부르건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닙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반수가 목숨을 잃는 것을 저지하는 일입니다.”
p.72- “법률에 규정된 조치가 중대하냐 아니냐가 아니라, 이 도시 인구의 반수가 목숨을 잃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 조치를 내려야 하느냐 아니냐를 알자는 것입니다. 그 밖의 것은 행정적인 문제인데, 바로 그런 문제를 해결하라고 현행 제도는 도청의 지사직을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 아, 읽으면서 짜증이 난다.
형식적인 것, 법적인 것에 치우쳐 행정조치를 하는 이들의 행태에 대해서.
병의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병을 표현하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 말인가.
그들이 위에서 심사숙고와 정확한 표현, 정확한 진단등을 내세우면서 책임질 소지를 줄여나가려 애쓰고 있을 때 아무것도 모르는 시민들은 죽어나가는 현실인데 말이다.
지금의 행태도 똑같다.
사태가 순식간에 퍼져 긴급을 따질 때, 중국인 입국금지를 안해서 그렇다, 정부가 무능해서 그렇다,등등의 책임론을 거론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혀를 차게 된다.
지금 당장 그것이 무슨 문제란 말인가.
힘을 합쳐 이 사태를 잡은 이후 문제론, 책임론을 따져도 될텐데, 그저 서로 물어뜯기에 정신없는 육식동물의 본능만 살아남은 저 볼품없는 모습이란..
위기가 기회라는 생각으로 기회주의자들은 고개를 내미니 이 책은 알려준다.
과연 누가 앞뒤 안 가리고 일어난 문제만을 제대로 바라보는지, 누가 문제의 책임과 후폭풍을 계산하고 발을 빼려하는지 정확히 보라고 말이다.
‘신문과 당국은 페세트에 관해서 더할 수 없이 교묘한 속임수를 쓰고 있다.’의 오랑시의 상황과 비슷하게도 우리에게 쏟아지는 정보들은 우리를 느슨하게 만들기도 하고, 가짜 뉴스가 성행하기도 한다.
정부가 하는 일은 국민들이 동요되지 않고 불안감을 갖지 않되, 위기의식은 지니고 있게 해야 하는 것이 맞다. 현 사태에 사망자의 수치는 숫자가 아니라 백분율로 표시하여 불안감을 없애되, 매일매일의 정부브리핑으로 전 국민들에게 위기상황에 대해 보고를 하고 있다.
모든 것이 다 마음에 차지는 않으나, 가짜 뉴스를 없애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주려는 정부의 모습은 믿음을 주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p.54- 사실 재앙이란 모두가 다 같이 겪는 것이지만 그것이 막상 우리의 머리 위에 떨어지면 여간해서는 믿기 어려운 것이 된다.
(…) 그들이 겸손할 줄을 몰랐던 것뿐이다. 그래서 자기에게는 아직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고 믿었으며 그랬기 때문에 재앙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추측했던 것이다. 미래라든가 장소 이동이라든가 토론 같은 것을 금지해 버리는 페스트를 어떻게 그들이 상상인들 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믿고 있었지만 재앙이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 전율이 느껴지는가.
1947년에 출간된 이 책의 내용이 70년이 넘은 지금의 상황과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재앙을 마주친 인간들의 내면성을 어찌 이렇게 섬세하고 정확하게 열거를 해 놓았다니.
현재 재앙이 ‘페스트’가 ‘코로나’로 바턴체인지를 했을 뿐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 인간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처럼 한결같을 수가 있다는 것도 놀랍기만 하다.
171- “(…) 앞으로 무엇이 나를 기다리는지, 이 모든 일이 끝난 다음에는 무엇이 올 것인지 나는 모릅니다. 당장에는 환자들이 있으니 그들을 고쳐 주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반성할 것이고, 또 나도 반성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긴급한 일은 그들을 고쳐 주는 것입니다. 나는 힘이 미치는 데까지 그들을 보호해 줄 것입니다. “
179- 문제는 오로지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죽는다든가 결정적인 이별을 겪는 것을 막아 주자는 데에 있었다. 그러려면 유일한 방법은 페스트와 싸우는 것이었다.
180- “제일 어려운 일도 아닌걸요. 페스트가 생겼으니 막아야 한다는 건 뻔한 이치입니다. (…)”
209- “두고 보아야 압니다.” “우리의 할 일을 다하고 나서 말이죠.”
216- “(…)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거은 단지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일지도 모르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307- ‘기진맥진하도록까지 노력을 쏟고 있던 의사들이나 조수들’이었지만 그 이상의 노력을 요하는 상황을 상상해 볼 필요는 없었다. 그들은 다만 규칙적으로 그 초인적인 일들을 계속해야만 했다.
– 페스트가 창궐하여 폐쇄된 도시를 야금야금 먹어갈 때, 리유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또 그의 옆에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소소한 이웃들이다.
생사를 가르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손을 보태는 사람들, 이 사람들의 성실함과 이들이 말하는 당연함이 왜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지 않는 걸까?
이렇게 대단한 영웅들이 페스트와 싸우는 동안 페스트를 이용하여 자기 배를 불리고, 자기 밥그릇만 지키는 악인들도 등장한다.
위기의 사태가 찐을 찾아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지만, 우리는 누가 우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영웅들인지 잘 살펴야 한다.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p.272)
306- 페스트는 이제 그 정점에 편안히 자리 잡고 앉아서, 착실한 관리처럼 매일매일의 살인에서 정확성과 규칙성을 과시했다. 원칙적으로는, 그리고 당국의 견해로는, 그것은 좋은 징조라는 것이었다.
333- “… 인간은 희생자들을 위해서 싸워야 하죠. 그러나 사실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게 되고 만다면 투쟁은 해서 뭣하겠어요?”
– 페스트도 코로나로 무한정 길어진다.
금방 이 사태가 진정되고 끝날 것 같았는데,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의 4부에서는 ‘밤낮으로 자기네들의 일에 몰두하고 있을 뿐 신문도 보지 않고 라디오도 듣지 않’는 그들의 무관심과 피곤으로 모든 것이 지쳐 요행에 자신의 안위를 거는 의료진들의 무신경해짐에 대해 이야기한다.
읽은 대목대목마다 가슴으로 전해왔고, 깊은 공감을 하니 단순한 소설이 아닌 시사비평을 접하는 것 같은 헷갈림이 느껴졌다.
이야기를 읽으며 무신경해지고 점점 무관심해지는 나를 그리고 주위 분들을 보며 깜짝 놀란다.
이야기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현재의 모습이라니..
이야기는 술술 넘어갔지만, 마음은 자꾸만 콩밭에 가 있었다.
페스트가 종식되었을까?라는 단어가 나올 거라는 기대와 함께 마지막 페이지의 콩밭말이다.
그 마음은 지금의 코로나가 얼른 종식되길 바라는 마음이 반영되어서겠지.
하지만 결론은 너무나도 허무하다.
아…. 너무한 것이 아닌가.
이토록 잔인한 것이 사람의 힘으로서 어찌 할 수 없는 전염병 ‘페스트’인건지 작가의 의도인건지 아님 그 두가지 다인지도 모른다.
이 책과는 많이 다른 결말을 기대하고 싶은 마음에 책장을 다시 넘겨보고 또 넘겨보며 아쉬움을 내비친다.
이 책에서는 경고한다.
‘기쁨에 들떠 있는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페스트는 결코 종식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떠한 모습으로 숨어 있다가 우리의 곁으로 올지 모른다.
페스트의 이름으로 올 수도 또 다른 이름으로 우리에게 찾아와 불행과 교훈을 주려고 할 지 모른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중국을 시작으로 우리 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로 무서운 속도로 달려드는 것과 같이 말이다.
이 책을 읽었을 때는 3월 중반을 달려가는 시점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우후죽순 퍼져 걱정되었고, 불안했고, 무서웠다.
그보다 30여일정도 지난 지금 리뷰를 적으며 현재를 바라본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지만, 기간이 길어지고, 지역감염이 심각하지 않은 상태가 유지되다보니 점점 생활의 긴장감이 무뎌진다.
마치 전염바이러스와 평행선을 가는 것처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 일상생활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안일한 생각이 툭툭 튀어나온다.
페스트가 잡히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에 괜찮아졌다는 안도과 마음에 닫아놓은 빗장을 풀어버리는 방심이 도리어 그들을 덮쳤음을 지금의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상기한다.
‘오늘날에는 누구나가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이기에 서로간의 거리를 두어 나 뿐만이 아니라 내 가족, 그리고 더 나아가 타인들의 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나는 괜찮겠지, 라는 생각은 나를 죽이고, 남을 죽이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끝까지 긴장을 풀지 않아야 한다.
우리에게 페스트도 코로나도 감히 넘어오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