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평범한 남녀가 만나 한 눈에 반하고 사랑을 하고 가정을 꾸린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정상적인 가족’의 요소-모성애, 가장의 책임감, 부부의 애틋함-를 모두 갖춘 가족이었다. 두 사람의 만남부터 집을 구하고 양가친척들과 파티를 하고 아이를 키우는 일련의 나날들이 참 완벽할 정도로 평화로워서 오히려 낯선 감정을 느꼈다.
이상하리만치 지속되던 평화는 다섯째 아이, 벤이 태어나면서 산산히 깨졌다. 친척들은 점차 오지 않았고 아이들은 스스로 다른 친척들의 집으로 가는 것을 선택했다. 벤은 모든 식구에게 증오와 공포의 대상이었고, 좋은 부부였던 해리엇과 데이비드도 벤을 감당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해리엇은 다시 한 번 ‘모성애’라는 전통적 가치관을 택한다. 아무리 괴물같은 아이여도 자식을 비인간적인 요양원에서 죽게 만들 수 없다는 선택은 당연해보이고 숭고해보이기까지 했다. 어쩌면 벤은 그저 평범한 아이들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저 속을 알 수 없고 아이답지 않고 낯선 생김새와 약간의 자폐성향를 가진, 그럼에도 성실하고 때론 활발한 그런 아이 말이다. 읽는 내내 나는 벤이 어떤 아이인지 설명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었을 무렵 포기했다. 앞 문장에서 서술을 해놓고 이런 말을 하는 건 앞뒤가 안 맞지만 사실이다, 저 문장은 단순하게 좋은 면만 보려고 노력해서 파악한 것으로 책 속에 나타난 벤을 표현하기에 절반의 절반도 안된다. 누군가 ‘아예 틀렸다’라고 얘기해도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만큼 벤이 어떤 아이인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책의 흐름은 벤이 태어나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고 할 만큼 전반부와 후반부의 분위기가 상반된다. 책의 초점조차 해리엇과 데이비드의 가족을 모두 구사하던 것에서 어느 순간 해리엇과 벤의 이야기만 드러난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서도 해리엇의 모습과 끝내 벤이 어떻게 될까-가 주된 감상으로 남는다.
이 이야기는 결국 어떤 메세지를 던지는 것일까-책을 덮고 나서도 계속 했던 고민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후기도 읽어보고 검색도 해봤다.
책 뒷면에 적힌 ‘호러 기법으로 그린 가족 이데올로기의 허상과 세기말 인간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라는 소개말을 중심으로 고민이 이어갔다.
누군가는 ‘남들과 다른 이들이 고립되는 과정‘을 담은 책이라고 표현했다.
부부 간 애정, 부모로서의 책임감, 해맑은 아이들, 금전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지지해주는 원가족들 사회가 바라는 ‘가족’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는 가족에게서 태어난 다른 존재, 벤. 좋은 부모였던 해리엇은 벤의 다른 점을 마주할 때마다 두려움과 낙담, 통제할 수 없다는 충동을 느끼지만 애정과 모성애를 의도적으로 고집한다. 요양원에서 벤을 데리고 오는 장면에서 해리엇이 끝내 놓치지 못한 모성애와 그 결과로 점차 가족들로부터 고립되는 모습이 나타난다. 자신이 원했던-어쩌면 사회의 가치로부터 강요된-선택을 했으나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상황들 속에서 해리엇은 자포자기 심정이 들었을 것이다.
부모라면 마땅히 자식을 품어야한다는 이데올로기에 따라 벤을 받아들이려 한 해리엇의 지난한 모성애에도 불구하고 해리엇조차 고립되는 결과를 보고 나는 묻게 된다. 어떤 가족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개인이 가족이라는 형태에 들어가게 되면 그냥 한 사람이 아니라 가족 내의 무언가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
아이를 기른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해리엇에게 이입되어 많은 생각을 거쳤다고 한다. 가족 중 어느 누구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양원에서 데리고 온 해리엇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본인이 같은 상황이라면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지 사실 모르겠다던 감상이었다.
책의 초점이 옮겨가듯 해리엇과 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찬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그런데 나는 그러면서도 마음이 가는 인물이 있었는데, 넷째 폴이다. 부모의 사랑이 세상의 전부인 연령일 때 이미 3명의 아이들과 배 속에 있는 벤의 큰 존재감때문에 뒤켠에 밀려나야만 했던 막내 폴.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된 아이들이 친척집으로-벤을 피할 수 있는-갈 때도 어렸던 폴은 그러지 못했고 돌아온 벤과 단 몇 시간이라도 한 공간에서 함께 있어야 했다.
큰 비중이 있지는 않았지만 이따금 등장하는 폴의 존재는 내 마음을 아프게 했고 이후 상담을 받으면서 괜찮아지는 걸 표현하는 한 문단을 읽으며 마음을 다독였다. 그렇지만 끝내 어린시절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기억을 안고 가겠구나-라는 감상을 느끼며 폴을 보내주었다.
어둡고, 괴이한 후반부로 책을 덮을 때, 소설의 시작에서 행복한 가정을 꿈꾸던 어느 두 남녀의 모습이 떠올라 괴리감을 느끼면서 짙은 감정을 느낀 책이었다. 세계문학전집시리즈 중 이제야 몇 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책의 표지, 형태와 속지의 구성이 글과 참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다.
책에 수록된 작품해설과 작가연보를 읽으면서 도리스 레싱에 대해, 도리스 레싱의 작품에 대해 더 진득한 관심을 쏟고 싶어졌다. 다음에 읽은 도리스 레싱의 책은 어떤 분위기일까 매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