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준희의 1인칭 시점이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준희라는 인물은 무척 솔직하고 진솔하게 느껴졌는데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준희는 앞뒤 낯면이 같은 사람이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에 솔직했고 그 생각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고민해보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감정에 놀라기는 해도 부정하지는 않는 사람, 그런 단단함이 있는 사람이었다.
민선선배를 향한 사랑을 대할 때도 그랬다. 도망치는 법 없이 한 번 부딪쳐보는 준희였다. 찬란하다가 찌질했고 화려하다가 볼썽사나웠고 맹목적이었다가 미련없었다.
함께할 미래를 그리며 두근대는 모습, 그녀와 생활을 꾸린 산뜻한 아파트를 그려보고 침대에 누워 일상을 얘기하는 모습을 그리는 준희의 모습은 사랑에 빠진 여느 연인들과 다름없었다.
사랑의 주체자가 된 준희의 세계는 더없이 맑았고 솔직했다. 느닷없는 충동과 욕망을 느낄 줄 알았던 소녀는 순수했고 청량했다.
그래서 대학교에 들어가며 새로운 세계의 일원이 된 준희의 모습은 사뭇 거리감이 느껴졌다. 이 새로운 세계는 소녀가 열렬히 사랑했던 가수의 이야기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소녀는 여자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치마에 니삭스를 신고 6센티미터 구두를 신는 등의 따위들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세련되고 능숙한 여대생을 만들기 위한 무엇의 의도대로.
그렇게 “그 엄청났던, 소녀들의 사랑하려는 욕구”는 숨겨지고 억압당하고 스스로에게 부정당해버리다가 결국 바스라지고 만다.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고, 불안하고 내 모습이 작아지고 정말 어쩔 도리 없이 그저 휘청대는 모습. 본능적이어서 우스꽝스럽지만 본능적이기에 순수하다. 소설에 나온 모든 인물들은 사랑을 했고 그래서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나조차 희미해진 나의 강렬했던 감정들을 찾는 과정이었고, 아련하고 모호하게 남은 그 시절의 잔재를 움켜쥐게 만드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