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만나는 첫 책은 언제나 짜릿하다. 여기서 첫 책은 작가가 출판한 첫 번째 책이 아니라 내가 처음 읽은 작가의 책이다. 어제 갔던 중고서점에서 정세랑 작가의 책을 샀고 나는 정세랑작가의 책을 읽는 것이 이게 처음이다.
마니아층이 확실하다고 생각해온 탓일까, 읽기 전에는 조금 겁났던 정세랑 월드가 무지막지하게 따뜻한 기운으로 나를 휘감았다. 처음 만난 정세랑 월드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포근하고 안락해서 ‘아, 두 권까지 가지 않아도 이미 동지가 되어버렸다’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으면서 정말 많이 웃었다. 오로지 쾌감을 위해 이 책을 썼다는 작가의 말이 너무나 와닿았고 이 책을 써주신 작가님께 감사했다. 읽는 내내 옆에 있는 언니에게 이걸 줄테니 빨리 읽으라고 닦달할 정도였는데 그러면서도 책을 놓아주지 못했다.
“안은영은 유감스럽게도 평범한 보건교사 아니었다.”
첫만남이 너무 완벽해버려서 더럭 조바심이 났다. 기대가 너무 커지면 안되는데, 싶다가 이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도 될까, 걱정이 되다가 정세랑 작가는 괜찮을거라는 조건없는 믿음이 불쑥 튀어올랐다. 이제 겨우 한 걸음 들어왔을 뿐인데 넘치는 신뢰감이 든다. 여하튼 새로 들어온 세계에 아낌없이 푹 빠지기로 마음먹었다. 정세랑월드의 입구에서 나를 반겨준 안은영 선생님의 따뜻한 용감함을 배우고 싶으니까.
남들이 보지 못하는 집념의 젤리 덩어리들과 싸우는 안은영의 스토리… 라고 하면 무슨 소린가 싶을거다. “죽고 산 것들이 뿜어내는 미세하고 아직 입증되지 않은 입자들의 응집체“가 나오고 “비비탄 총과 장난감 칼로 귀신과 맞서는 안은영“까지 읽었을 때까지도 이 책의 장르를 뭐라고 해야할지 확신이 안선다. 뒤표지에 본격 학원 명랑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떡하니 적혀있어도 다 읽고나야만 오롯이 이해가 가능했다. 이 책은 학원 49+명랑 50+미스터리 1의 게이지를 합쳐서 100을 만든 책이다. 명랑이 학원보다 1이 높은 이유는 명랑한 안은영만 있다면 꼭 학원물이 아니어도 성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칙칙한 호러물과 마구 달리는 소년 만화 중에 고르라면, 단연 마구 달리는 소년 만화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좋은 사람 옆에 또 좋은 사람이 있는 이야기다.(메켄지만 빼고)
오늘도 명랑하고 꿋꿋하게 사는 안은영과 보양식 역할을 맡은 인표, 혼란하고 흔들리고 아프지만 동시에 자라는 중인 올망졸망한 학생들, 지나고보면 꽤 괜찮았던 스승들, 좋은 사람 안은영 옆에 잠시 머무르다 가는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
은영은 참 친절한 어른이었다. 어릴 적부터 남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는 사실을 둔다면 그런 어른이 된다는 건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은영은 자신의 팔자를 능력으로 바꾸었고 자신에게는 하등 이익이 되지 않는 능력이지만 다른 이들을 위해 행동했다. 그리고 그 행동하는 것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그녀가 말하길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해서 자신의 친절함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며 은영은 지독한 세상에게도 친절을 베풀었다. 자신은 겪지 못한 친절을, 아량을 기꺼이 다른 이들은 누릴 수 있도록 힘썼다. 무척이나 친절하고 또 용감하며 다정했고 따뜻한 안은영.
10개의 에피소드식 전개는 속도감있게 진행되지만 허투루 쓰인 조사 하나가 없었고 알짜배기만 모은 이야기보따리같은 이 책을 한 장 한 장을 속속들이 넘기다보면 어느새 동이 나서 아쉬운 침을 삼켜야 했다. 깔끔하고 중독적인 뒷맛에 또 언젠든지 책을 펼쳐 M고에서 장난감 칼을 휘두르는 안은영을 보러 갈 요량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