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은 오래 전에 써서 고전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오랜 세월이 흘러도 거부감없이 읽히는 책이라고 보는 게 맞다.
고전 중의 고전으로 불리는 데미안도 인간의 본성을 다루고 있다.
소년이 청년으로 자라 하나의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을 이야기하는데,
성장소설이라 불리는 책과 달리 인간의 내면을 심도있게 다루고 있어 쉽게 읽히지 않는다.
부모의 사랑과 보호 아래 안락했던 가정이란 울타리 밖, 거친 세상을 맞딱뜨린 싱클레어.
친구에게 돈을 빼앗기게 생겨 정신이 한 개도 없는데 그것도 모르고 아빠는 더러워진 운동화를 타박한다.
속된 말로 뭣이 중헌지 모르는 아빠…..
에 대한 묘한 경멸과 우월감을 느끼며 싱클레어는 아이의 모습을 벗기 시작한다.
이렇게 자잘한 에피소드와 그에 대한 소회를 털어놓는 이야기라면 데미안이 고전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겠지.
싱클레어는 또래보다 성숙한 데미안을 만나 기존의 가치관에 끝없는 도전을 받는다.
데미안은 동생을 죽여 성경에 인류 최초의 살인자로 기록된 ‘카인’에 대한 옹호를 넘어,
자신들은 카인의 표를 달고 있다는 말도 서슴없이 한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허용된 것’과 ‘금지된 것’은 기존의 세상과 가치관이 만든 것이지
절대적인 허용과 절대적인 금지는 없으며
그 기준은 개인이 정해야 한다는 데미안의 생각에 싱클레어는 요동친다.
새는 껍데기를 깨고 알에서 나올 때에야 새로운 세상을 맞을 수 있다는 유명한 말이 데미안에 나온다.
끊임없는 고민, 방황, 감사, 그리고 내게 깨달음을 안기는 사람들.
친구 데미안이 있었고, 맘에 품기만 했던 여인 베아트리체와 목사 피스토리우스.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싱클레어는 성숙한 사람이 되어가지만 과정이 순탄치 않다.
피스토리우스에게 큰 도움을 받고 위안을 얻지만 그의 진부함에 결국 상처주는 말을 던지고
상처받은 그의 모습에 안절부절하지만 끝내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는 모습은 미성숙한 우리다.
미성숙해서 괴롭지만 괴로움을 딛고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가는 소년의 이야기.
시간이 지날수록 진한 여운이 남는 소설.
내가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한 여정,
세상이 정해준 틀을 깨고 나간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어려운지,
그럼에도 우린 온 맘을 다해 나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 데미안은 말한다.
그런데 이 책.
등장인물이 청소년이라고 해서, 인간의 성장을 다루고 있다고 해서 청소년 필독서가 맞을까?
끝부분에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엄마에게 남다른 감정을 갖게 된다.
데미안도 이 사실을 알지만 큰 문제없이 셋의 관계는 유지되는데
성인인 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지 궁금하다.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의 결합,
신이 창조한 자연이지만 우리도 자연을 창조함을 납득하려면 너무 어린 친구들은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