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ㅡ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를 도장깨기 하듯 읽고 있는 요즘, 수없이 많은 ‘모녀서사’ 이야기들 속 새롭게 다가오는 이야기를 하나 더 발견했다. 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가 바로 그것이다. ⠀
<딸에 대하여>는 요양 보호사로 일하는 엄마와 그의 레즈비언 딸에 대한 이야기이다. 동성애자인 자녀와 부모간의 갈등 소재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지만 이야기의 시점이 엄마의 관점에서 전개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어쩌면 내가 겪어본 적 없고, 앞으로도 없을지 모르는 누군가의 입장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해 볼만한 계기가 될 것 같기도 했다. ⠀
엄마와 딸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대척점에 서있는 듯하다. 딸은 본인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엄마의 눈에는 그저 평범함을 거부하고 여기저기서 문제를 일으키는 어린 아이같은 짓일 뿐이다. 더군다나 요양 병원에서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환자 젠을 보면서, 그의 화려했던 젊은 시절과 대비되는 현재의 초라함, 그 자체의 초라함이라기보다는 가족도 없이 치매를 앓는 그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같은 것에서 엄마는 딸의 미래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을 짐작하고 걱정한다. 결국 며칠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다른 시설로 옮겨진 젠이 계속해서 눈에 밟혔던 엄마는 젠을 당분간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기로 결정하고, 좁혀질 것 같지 않던 엄마와 딸, 그리고 그 애 사이의 긴장 관계는 젠으로 인해 잠시 휴지기를 갖게 된다. ⠀
작품 속에서 젠의 존재는 알게모르게 계속해서 엄마와 딸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엄마는 젠을 보며 딸의 미래와, 그 자신의 모습을 본다. 어쩌면 그래서 더 딸과 그 애에게 모진 말을 퍼붓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그들의 긴장 관계를 느슨하게 하고 마침내 작품 말미에 엄마가 그들에게 마음을 조금이나마 열게 된 것 또한 젠의 역할이 컸다. 엄마는 작품 내내 딸에게 ‘평범한’ 삶을 살기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족의 울타리 속에서 살아가기를 종용하고 혈연이나 결혼이 아닌 관계는 가족이 될 수 없음을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엄마가 실제로 자신의 가족도 아닌 젠에게 정을 주고 그를 집으로 데려와 죽음까지 함께한 것은 아이러니한 점이다. 어쩌면 젠의 죽음이 엄마가 그토록 공고히 믿어왔던 정상가족의 의미에 균열을 일으키게 한 계기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 말미에 엄마는 그 애에게 ‘내가 너희를 이해할 수 있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날까’ 묻는다. 젠의 장례식장에 마련된 방에 누워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순조롭고 수월한 일상’을 바란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나날들은 그렇지 않을 것임을 그 역시 안다. 다만 ‘마주 서 있는 지금’을 생각하면서, ‘그런 식으로 길고 긴 내일들을 지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볼 뿐이다’. 이해하고 싶지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던 몇몇 타인들의 얼굴을 머릿속으로 스쳐지나보내며 나 역시 이해란 그런 치열한 나날들을 건너 보내야 얻을 수 있는 것임을 알았다. 개인적으로는 소설을 읽는 이유에 대해서도 한번 더 생각해보게 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