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구나 착각 속에 살고 있다.

회사에 출근해 일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수다를 떨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평범한 일상이 영원히 지속되리라고.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에 있던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또 그곳에서 퇴근할 그들과 만나기 위해 역시 평범한 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착각은 무참하게 깨졌고 남은 자리엔 절망과 공허함이 자리 잡았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은 9.11 테러에 아빠를 잃은 한 소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시신조차 찾지 못해 빈 관으로 장례를 치르고 난 후 아빠의 서재에서 유품을 정리하던 소년 오스카는 우연히 깨뜨린 꽃병 속 열쇠를 발견하게 된다. 함께 있던 봉투에 ‘블랙(black)’이라는 글자 외엔, 어떤 것을 여는 열쇠인지 무엇을 위한 열쇠인지 아무런 정보도 없는 아빠의 마지막 흔적. 오스카는 그 비밀을 풀기 위해 뉴욕에 거주하는 ‘블랙’이라는 성씨를 가진 사람들을 추리고 추려서 무작정 찾아보기 시작한다. 갑작스레 맞이한 아빠의 부재를 견디기 위해, 소년 오스카는 ‘어쩌면’이라는 수식어가 불필요할 정도로 무모한 여정에 오른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오스카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것이다. 이들은 2차 대전 당시 드레스덴 폭격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었다. 할아버지는 연인 애나와 태어나 보지 못한 아이를, 할머니는 언니 애나와 아버지를 잃었다. 바라만 보아도 터질 것 같았던 마음과 가족이라는 편안함이 폭격의 희생양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말을 잃었고 할머니는 마음을 잃었다. 그 둘은 서로의 공허함을 대신했다.

두 이야기는 교차하며 진행된다. 결국, 테러와 전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어떻게든 살아가는 과정이다.

 

500 페이지가 넘는 긴 분량이며 내게 긴 호흡을 요구했던 소설이다. 읽는 도중 할아버지의 투병 소식을 접하고, 한 달 뒤 상을 치르게 되면서 긴 기간 잠시 내려놓았던 책이기도 하다.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맞이한 할아버지의 빈자리는 어색했다. 무언가 잘못된 것만 같았다. 소설은 내 마음을 읽듯, 그 공허를 이야기했다. 여느 신파극처럼 억지로 눈물을 짜내지도 절절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그저 그들이, 한순간에 아버지를 잃고 연인을 잃고 가족을 잃은 그들이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스물아홉의 내가 아홉 살의 오스카가 된 것처럼, 당장 닿지 않는 연락에 마음을 졸였고 상상으로 만들어낸 불안한 미래에 공포를 느끼기도 했다. 그만큼 애틋했던 사람의 죽음은 오스카에게도 내게도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

 

“찾지 못했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어요.” “네가 찾던 것이 아니었니?” “그건 아니예요.” “그럼 왜?” “자물쇠를 찾았으니 이제는 수색을 할 수가 없잖아요.” 그는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자물쇠를 찾으면서 조금 더 오래 아빠 곁에 머물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언제까지나 아빠 곁에 있을 수는 없잖니?” 나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죠.” p404

 

사람은 고통을 견뎌가며 성장하기 마련이다. 오스카는 아빠를 잃은 상실감을 받아들이는 것을 회피했다. 하지만 열쇠의 비밀을 찾고 아버지의 빈 관을 다시 파내며 자신의 상처를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는 한동안 접어두었던 이 책을 다시 폈다. 마침내 모두 읽고 이 글을 쓴다. 어느샌가 나를 오스카와 동일시했다. 마찬가지로 나 또한 회피해왔기 때문이다. 아직도 문득 불안한 미래를 상상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 내가 과연 완전히 극복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나쁘게 말하면 이제 시작일 뿐인데 말이다. 그나마 다행은 생각의 끝이 언제나 하나로 수렴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하며 사랑하자. -라는 결론으로. 오스카의 할머니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사랑한다는 말은 몇 번이나 반복해도 아깝지 않으니 언제나 사랑을 이야기하자. 후회 없이 사랑하자.

현재의 나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오늘도 사랑합니다.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어떻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겠니? 너에게 지금까지 전하려 했던 모든 이야기의 요점은 바로 이것이란다, 오스카. 그 말은 언제나 해야 해. 사랑한다, 할머니가. p439

 

+소설의 내용뿐만 아니라 기존의 형식적이었던 구성을 탈피한 것으로 더욱 유명해진 책이기도 하다. 빨간 줄로 문장을 교정하거나 페이지에 한 문장만 있는 것도 신기했지만 글자가 뺵빽히 적혀있어 불량인 줄 알고 오해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보면서 인물들의 감정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데 도움을 받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