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들

장강명
출간일 2019년 6월 21일

취업, 해고, 구조조정, 자영업, 재건축… 한국에서 먹고사는 문제의 고단함과 쓸쓸함을 지적이고 균형 잡힌 시선으로 포착하는 10편의 연작소설. ‘산 자들’을 소개하는 문구다. 말 그대로 산 자들, 이 대한민국에서 삶이라는 것을 살아내고 있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린 채 글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이전에 단편으로 먼저 접했던 ‘알바생 자르기’를 비롯한 10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 ‘산 자들’은 조금, 아니 많이 불편하고 거슬리는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꺼낸다. 2019년, 우리가 수많은 발전과 위대한 문화를 이룩해왔다고 믿고 싶은 이 시대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곳곳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눈 앞에 들이댄다. 대기발령이라는 단어가 어떤 식으로 사람의 인격을 짓밟아 제 발로 회사를 나가도록 만드는지, 회사에서는 알바생을 어떻게 뽑고 어떤 식으로 대하는지, 알바생은 철저히 자본 논리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뻔뻔해져야만 하는지, 스트리밍 서비스로 노래 한 곡을 들을 때 그 노래를 부른 이름 없는 가수는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적은 돈을 받는지 등등.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 차례차례 펼쳐진다.

모든 소설을 인상 깊게 읽었지만 특히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들었던 소설을 꼽자면 ‘대기발령’과 ‘공장 밖에서’를 꼽겠다. ‘대기발령’은 근무하던 부서가 없어지면서 자회사로 이직하라는 상부의 지시에 따르지 않은 다섯 사람에게 내려오는 대기발령 지시로 시작한다. 거의 복도나 다름없는 자리에 벽을 향해 설치된 책상과 의자. 대기발령자 준수 사항은 다음과 같다.

출근, 퇴근, 휴게시간 엄수. 업무 시간 중 교육 장소 이탈 금지.(10분 이상 자리 비울 시 담당자에게 승인받을 것.) 잡담, 개인 용무, 흡연, 어학 공부, 독서, 게임, 취침 금지. 업무 보고서, 회사 혁신 방안 보고서, 자기 주도 학습 보고서 제출.

어떤 업무도 내려오지 않는 상황에서 대기발령자들은 뒤로 직원들이 지나다니는 복도에 앉아 멍하니 벽을 쳐다보고 있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벽만 보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앉아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대기발령자에게 남은 선택은 두 가지뿐이다. 제 발로 회사를 나가던가, 순순히 상부의 지시를 따라 미래가 불투명한 자회사로 들어가는 것. 작금의 한국 회사들에서 버젓이 일어나는 일이다. 상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불온 분자에게 내리는 처벌과 협박이나 다름없다.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에게 하루 9시간 동안 자유를 박탈하는 대기발령. 인격을 무시하는 처사지만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 결국 다섯 대기발령자 모두 버티지 못하고 제 발로 회사를 떠난다. 2019년의 한국에서 사람에게 가할 수 있는 합법적인 고문의 다른 이름이 대기발령이 아닐까.

‘공장 밖에서’는 회사 소생 방안으로 생산직 노동자들의 대규모 정리해고를 정한 회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대규모 해고가 결정된 생산직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하고 파업 시위를 벌인다. 노동자들의 시위로 인해 공장이 가동되지 않자 생산직 노동자뿐 아니라 다른 직원들도 일을 할 수가 없게 되고 만다. 그 때문에 공장이 망할 위기에 처하자 직원들이 들고일어난다. 공장을 점거한 노동자들 때문에 자신들까지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공장 안에서는 생산직 노동자들이, 공장 밖에서는 직원들이 서로 경쟁하듯 시위를 벌인다. 시위는 안과 밖으로 점점 격해지고 결국 공장에 쳐들어간 직원들과 공장 안에 있던 노동자들 간에 폭력 사태가 번지며 소설이 끝난다.

이 소설에서는 공장에 걸린 해고는 살인이다 라는 문구를 통해 해고가 결정된 공장 안의 노동자들을 죽은 자들, 공장 밖에 있는 직원들을 산 자들로 규정한다. 죽은 자들은 자신들의 파업 시위로 해고를 철회시켜 산 자가 되기를 기원하고, 산 자들은 자신들까지 죽은 자가 되지 않기 위해 공장 안의 죽은 자들을 비난한다.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이 싸우는 결말에서 과연 이 싸움으로 모두 산 자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 자들도 죽은 자들도 자신의 해고를, 삶과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지 않았다. 누군가 마치 신처럼 해고를 통해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갈라놓은 것이다. 그 누군가들은 이 처절한 싸움판에 끼어있지 않다. 어딘가 높은 곳에서 산 자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 뒤엉켜 싸우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자들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원인 제공자가 없는데 원인이 해결될 리가 없다. 결국 살고 싶다고 외치는 죽은 자도, 죽은 자들 때문에 자신들까지 죽겠다는 산 자도, 애꿎은 상대와 싸우며 죽음의 구렁텅이로 빠져들 뿐이다.

개인적으로 장강명 작가님의 소설을 좋아한다. 지금의 한국 사회에 가장 천착한 소설을 쓰는 작가다. 불편하고 더부룩해서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을 응시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속이 안 좋다고 영원히 아무것도 먹지 않을 수는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에 발 딛고 사는 이상 언제까지고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속이 더부룩하지만 조금씩이라도 먹어보겠다는 사람에게 ‘산 자들’을 추천한다. 언제 죽은 자가 될지, 산 자가 될지 모르는 나라에 사는 당신에게 쓰지만 효과 좋은 소화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