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럴 법도 한 일이었다. 그때 난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말이다. 또한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속에서 그 시절이 훼손되는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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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도 빠짐없이 나를 주시하고 언제나 나의 편이 되어 주는 신이 있으면 사는 일이 한결 든든하지 않을까. 실제로 존재하는지 여부는 상관없다. 그걸 믿으면 얼마나 위안이 되겠나. 그가 실제로 그걸 믿는다는 점이 중요했다. 그는 눈동자 같은 신의 존재를 느끼며 힘을 내어 하루하루 살아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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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누군가를 사랑하면 갑자기 주변 모든 사람들이 위협적일 만큼 매력적인 존재로 보이는지 모르겠다. 아름다움은 도처에 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 나는 울고 싶어진다. 그들은 모두 아름답고, 모두 나의 적이다. 그들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둘러싸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들의 매력을 알아볼 것만 같아서 나는 애가 탄다. 그들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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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감정을 소유했던 게 아니라 감정이 나를 소유했던 것만 같다. 강물의 표면에 붙들려 이리저리 떠다니는 나무토막처럼 눈에 보이지 않고 파악할 수도 없는 심오한 물살에 고통스럽게 휩쓸려 다녔던 것만 같다. 그 물살의 방향이 바뀌기 전까지는 계속 그렇게 붙들려 실려 가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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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의 항구도시 목포를 배경으로 한 10대 소녀들의 어설프지만 순수했고, 맹목적이었지만 마음은 여렸던 사랑이야기를 담았다.
내게도 익숙한 팬픽,이반, 칼머리와 워커, 힙합바지 등이 등장해 잠시 그때 그시절을 회상하게 하기도 했다.
여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광경이었다.
짧게 깍은 머리와 조금은 보이쉬한 성격을 가진 선배나 친구를 동경하고, 좋아하고, 가까이 하고 싶어했던 마음들은.
사랑이라고 하기엔 어설프고, 어쩌면 그때의 분위기에 휩슬려 느꼈을지도 모를 부정확한 감정들을 그녀들은 사랑이라 생각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 역시 사랑이기에 부정할 수는 없지만, 동성애라고 표현하기에는 한참이나 모자라고 다른 감정들이었다.
항구의 사랑은 사랑이라고 부를수도, 우정이라고 부를수도 없는 애매하고 모호한 경계속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관심갖고, 질투하는 마음들을 투명하게 잘 표현했다.
감정들, 그때의 배경, 주변상황 모두가 너무 섬세하고 세밀해서 놀라울 정도였다.
동성애든 그렇지 않든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들,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맴도는 모습들, 망설임, 누군가와의 이별.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상실했을때의 감정들과 우리의 모습들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 책 한권에서 작은 추억들을 회상할 수 있어 반갑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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