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맨션

조남주 작가님의 이전 작품들은 주로 여성, 비정규노동자 등 특정 약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82년생 김지영>이나 <그녀 이름은>처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또는 내가 겪는 중인) 사람이 소설에 등장했다. 그렇지만 이번 작품은 아예 가상도시국가를 배경으로 타운 주민, L2, 사하란 계급이 존재하는 이상하고 불편한 시스템 속에서 적응해나가려는 인간과 이를 거부하고 밀쳐내려는 기득권과의 투쟁을 보여준다.

일정 기간 동안만 체류권을 부여받은 ‘L2’와 그조차도 거부당한 최하층민 ‘사하’는 공교롭게도 ‘사하 맨션’이란 다 쓰러져가는 건물 안에서 타운의 제지를 받지 않고 산다. 물, 전기 등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는데 필요한 혜택조차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꼭 필요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는 일들(청소, 수리, 잡일 등)을 하며 쫓겨나지 않고 머무를 수 있는 하루에 만족하며 산다.

사하 맨션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은 부모의 계급을 물려받으며 그들이 보며 자란 생환 반경만큼 만의 사고를 하고 순응한다. <기생충>에서 지하벙커 안에서의 생활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이들처럼. 기초안전과 약간의 식량만 있으면 햇빛도 들지 않고 사람과의 교류도 다 사치로 여기게 되는 건, 과연 이 사회가 어디까지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노력을 통한 신분 상승 문턱을 바늘구멍처럼 만들 작정인지 되묻게 한다.

타운 사람들은 사하 맨션을 각종 범죄들의 온상으로 지목한다. 경찰들은 살인 사건이 일어나자 가차 없이 사하 맨션의 모든 집을 수색하고 잠복근무를 한다. 그리고 죄 없는 이를 성추행하기에 이른다. 그들 역시 타운 사람이고 여기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기껏해야 체류권만 있는 이방인인 것이다. 없는 사람끼리 연대하여 맨션 안의 평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은 애석하게도 타운 사람들의 ‘아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는 우미를 연구하는 연구원들의 태도에서 알 수 있다.

전염병을 가진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우미는 건강히 살아있다는 이유로 타운의 연구 대상이 된다. 그녀가 가진 계급에 비해 자유로웠지만 그 대가는 타운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실험체가 되어야 하는 조건일 뿐, 인간으로서의 대우는 없다. 자신이 아무 문제도 없단 사실을 안 우미에게 내릴 처분을 난감하다고 표현하는 그들과 달리 우미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항쟁하며 타운의 기준과 사하, L2의 기준이 얼마나 다른지를 알 수 있었다.

이건 마치 정규직의 희망을 자르는 부당 해고와 좁아지는 취업문, 그들끼리의 리그인 정치, 경제 기득권들의 모습과 같고 더 나아가 난민을 떠오르게 한다. 제발 안전한 나라에 머무를 수 있게 해달라는 그들과 이를 거부하는 사회, 사회 안에서도 홀대받는 소시민들. 이들이 L2, 사하, 타운 사람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