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사랑과 더불어 단란한 가정을 만들려고 했던 데이비드와 해리엇의 꿈은 저택을 구입하고 4명의 자녀를 낳는 동안은 실현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주위의 만류도 있었지만, 그들은 결코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들의 꿈이 자신들의 힘으로만 달성할 수 없음을 보여주면서 불안감을 조성하기 시작합니다. 저택을 구입하고, 또한 아이들을 돌보는 데 있어서 이들은 각각 부모의 도움을 받게 되니까요. 그렇다보니 이들의 꿈은 왠지 사상누각이 되지 않을까 우려가 생기게 됩니다. 이혼하여 새로운 가정을 꾸린 데이비드의 아버지와 홀몸으로 딸들을 보살피는데 인생을 소비하는 해리엇의 어머니라는 존재는 어떻게 보면 이전 세대의 유산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다섯재 아이인 벤의 출생과 더불어 이러한 불안감은 현실로 나타나게 됩니다. 애초에 부부는 조금 시간을 갖고 아이를 계획하였지만, 벤은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덜컥 임신하여 출산할 수밖에 없었기에 벤의 등장은 그 기괴한 외형과 더불어 이들 가족에 불안을 조성하는 존재임을 암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닌게 아니라 벤으로 인하여 이들 가정은 공포에 휩싸이면서 결국 벤과 이별하면서 집을 팔기에 이르게 됩니다.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는 벤으로부터 느껴지는 공포로 인하여 몰락하는 한 가정의 모습을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그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 본다면 그러한 비극을 벤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다소 무책임하다고 생각되더군요. 당시의 사회와는 다른 모습으로 가정을 설계하였던 데이비드와 해리엇의 출발 자체도 여전히 부모에게 의존하는 역설적인 출발은 결국 이들 젊은 부부의 꿈이 허상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벤도 그러한 상황이 빚어낸 존재일 뿐이니까요.
누구나 가정을 꾸리면서 가족의 행복을 꿈꾸곤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는다면 그러한 꿈이 때론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의하여 허물어짐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것도 타인이 아닌 자신들의 선택과 준비 부족에 따른 것으로요. 그러한 원인을 벤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그 자체가 공포가 아닐까 생각되더군요. 저만 그렇게 느낀 걸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