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통해 ‘계나’라는 언니를 새롭게 사귀게 되었다. 내가 해왔던 고민들, 또 앞으로 사회를 살아가면서 해야 할 고민들을 먼저 한 언니를 알게 되었다. 진정으로 한 사람을 알게 되었다는 느낌이 들도록 이 책은 구성되어 있다. 구어체를 사용하여 맥주 한 캔씩 들고 한강에 앉아 생각을 나누는 것처럼 말을 건다.
“ 아침에 지하철 2호선 타고 아현역에서 역삼역까지 신도림 거쳐서 가본 적 있어? 인간성이고 존엄이고 뭐고 간에 생존의 문제 앞에서는 다 장식품 같은 거라는 사실을 몸으로 알게 돼. 신도림에서 사당까지는 몸이 끼이다 못해 쇄골이 다 아플 지경이야. 사람들에 눌려서. 그렇게 2호선을 탈 때 마다 생각하지.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을까 하고.”
솔직히 제목으로는 끌리지 않았던 책이다. 개인적으로 헬조선론을 싫어하는 입장에서 “한국이 싫어서”라는 도발적인 제목은 거부감만 일으켰다. 어쩌면 의도된 것일 수도 있겠다. 거부감을 일으키다 못해 ‘그래, 왜 싫은데?’라는 생각이 들어 펼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위 구절 때문에 결국 이 책을 사게 되었다. 나 또한 매일 아침 2호선을 타고 허리가 꺾이고 몸이 끼이고 눌리는 삶을 살고 있고 그 입장에서 위 문장의 표현과 울분이 너무나도 공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계나가 호주로 가는 계획을 미루었다가 다시 결심하게 된 것도 2호선이었다. 너무나도 꽉 차 있어 서로의 몸을 접촉하려고 하지 않아도 접촉할 수밖에 없는 그 축사 같은 장소에서 “어쩔 수 없지”라는 이해를 하다가 열차를 벗어나 탁 트인 역사로 나왔을 때의 그 자유감이 계나를 호주로 가게 하였다. 계나에게는 2호선뿐만 아니라 이 한국 또한 축사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축사를 벗어났을 때의 느낌이 얼마나 큰 행복을 선사해줄지 깨닫게 된 것이다. 꽉 차있는 2호선에서 겨우 ‘내릴게요’를 10번쯤 외치고 매일 아침 내릴 때 내가 느끼는 해방감과 행복감과 같았을 것이다.
계나와 나의 차이점은 나는 그 현실에 순응해버렸고 그 축사 속에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허리가 안 꺾이고 갈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내릴게요’를 외치고 않고 내릴 수 있을지나 궁리한다면 계나는 그 속에서 안주하지 않고 변화를 추구했다는 것이다. ‘왜 싫은데?’라는 반항적인 질문에서 읽게 된 이 책은 결국 이처럼 나 또한 계나와 비슷한 상황들 속에서 힘듬과 울분을 느끼고 있었지만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아니라고 외면했다는 것을 깨닫게 하였다.
계나는 ‘자산성 행복’과 ‘현금 흐름성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혹자는 자산성 행복을 추구해 미래를 바라보며 조금 지금이 힘들더라도 조그마한 것의 성취가 나중에 자신을 복되게 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행복을 사소하게 찾아간다. 혹자는 현금 흐름성 행복을 추구해 유동성이 큰 현금과 같이 그 순간순간이 행복으로 가득 차야 한다. 계나는 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했고 한국에서는 그것이 충족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축사를 탈출했다. 그렇다면 나의 행복은 자산성 행복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고난을 외면하고 인내한 사람이 과연 진정한 행복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그렇다고 나는 계나처럼 무작정 호주에 가서 이것저것 모험해보고 잃어보고 또 경험해볼 용기는 없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나와 수많은 사람들이 결국은 이 고난을 모두 외면하고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의 행복이 ‘자산성 행복’이라고 자기 위안하며 매일 축사에서 살아가는 것일 테다. 어떤 것이 진정한 행복일까? 이 책은 이처럼 계나라는 언니를 나에게 소개해주어 내가 외면하고 있던 나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