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난 내 속의 어떤 의미를 좇아 기어이 삶을 살고 있을까. 의미는 흐릿하고 무의미는 뚜렷하다. 보잘것없고 하찮은 삶을 견인하는 건 내가 부여한 의미일까 부여된 무의미일까. 그렇다면 의미있다는 건 뭘까.
– “시간은 흘러가. 시간 덕분에 우선 우리는 살아 있지. 비난받고, 심판받고 한다는 말이야. 그다음 우리는 죽고, 우리를 알았던 이들과 더불어 몇 해 더 머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 죽은 사람들은 죽은 지 오래된 자들이 돼서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고 완전히 무로 사라져 버리는 거야. 아주 아주 드물게 몇 사람만이 이름을 남겨 기억되지만 진정한 증인도 없고 실제 기억도 없어서 인형이 되어 버려…(…)”[p33-34]
누구나 그랬듯 나 자신을 특별하다 믿었다. 어릴 때부터 희한하게도 그랬는데 세상이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음을 의아해하다 조금씩 나를 깨달아갔다. 그렇게 간혹 무의미와 의미 사이에서 내 삶의 가치를 다른 이들의 삶과 저울질했다.
– “(…)보잘것없는 것의 가치를 그 사람은 전혀 몰랐고 지금도 몰라. 자, 이게 다르델로의 어리석음이 어떤 장르냐고 한 네 물음에 대한 내 답이야.”[p25]
–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개조할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다는 걸 오래전에 깨달았어.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뿐이지.[p96]
각자에게 부여된 삶이 무의미해서 보잘것없고 하찮다 생각한다면 누가 그 삶을 이어가고 싶을까. 살면서 느끼는 무의미를 희석시키려 의미를 덧씌우고 발버둥치나 발버둥일 뿐 무엇이 의미있는 일인 줄 모른다. 그런 일은 내게도 의미있을까(세상의 기준에 맞춘 의미가 개인에게 적용되는지는 생각해볼 문제이니).
내가 온전하게 아는 한 가지 사실은 내가 원하는 것이 대체로 무의미한 것에 있다는 것이다. 뭐든 쓸데없고 예쁜 것에 목숨거는 나는 이런 가볍고 무의미한 것에 기분 좋음을 느끼고 그것이 주는 순간의 행복에 매료된다. 그런 것들이 쌓여 내 삶이 된다. 무의미가 쌓여 의미가 되듯.
무의미한 것은 무의미하지 않게 된다. 무의미는 무의미를 인정하는 순간 내게 의미있는 것이 된다. 무의미함으로써 꼭 필요한 것이 된다.
밀란 쿤데라는 배꼽, 거짓말, 천사, 스탈린의 농담, 칼리닌, 네 명의 주인공 등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며 삶을 보여준다. 아 어쩜 이렇게도 모든 문장이 다 주옥 같을까. 네 사람과 스탈린, 칼리닌의 이야기는 하나같이 다 무의미한 것으로 가득차있는데 그것이 우리의 일상이고 삶이라 위로를 준다. 밀란 쿤데라는 무의미한 것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무의미한 삶을 살아내기 위해선 그걸 사랑하는 수밖에 없다고. 그리고 우리는 충분히 그 무의미한 것에 마음이 가있다. 삶은 진정 무의미의 축제인 것이다.
– 그녀는 죽는 것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가장 큰 적은 수영을 잘하는 자신의 제어 불가능한 반사운동이 아니라 자신이 고려하지 않았던 누군가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는 온힘을 다해 발버둥 쳐야 할 것이다. 자신의 죽음을 구하기 위해.[p50]
아 진짜 너무 재밌게 읽었다(배꼽에 대한 품평은 문학적 요소로 애써 넘기고). 진짜로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