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하고 환상적이다. 흘러가는 기법이 특이해 90페이지도 안 되는 짧은 소설을 며칠에 걸쳐 읽었다. 2인칭 소설을 처음 접했다. 뒤의 해설을 훑기 전에는 이런 독특한 기법이 2인칭이라는 것도 정확하게 몰랐다. 다시 읽어봐야 더 정확히 알겠지만, 해설을 읽으면서 내 생각이 무너질까 해설은 리뷰를 쓴 이후에 읽거나, 혹은 안 읽는 편이다. 리뷰를 쓰면서 이것저것 궁금했던 부분을 찾기 때문에, 그 이후로도 몰랐던 섬세한 해설을 읽는 즐거움이 좋다.
–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소녀를 좇아가는데, 눈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귀로 그녀의 치마가 사각거리는 소리와 옷 장식들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가는 너 자신을 문득 발견해. 그녀의 눈을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말이야.[p21]
극 중 역사학도 펠리페를 찾는 노파 콘수엘로 부인은 높은 임금과 구체적인 조건으로 펠리페를 집으로 끌어들인다. 펠리페는 그 음침한 집에서 마찬가지로 음침하고 기괴한 노파와 그녀의 조카인 녹색의 아우라를 만난다. 아름다운 아우라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펠리페의 욕망이 이는데 그 욕망은 굉장히 원초적이고 어딘가 타의적이다. 작품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해 모두가 실제 같으나 아마도 또 모든 것에 환상이 섞였다.
– 넌 지금 단지 그녀의 미모만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해방해 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생각하면 할수록 그녀는 네 마음속에 더 깊이 들어오는 거야. 이제 너의 욕망을 충족해 줄 도덕적 명분을 찾았구나. 자신이 순수하다고 생각하며 만족하네.[p36]
– “사람들은 자신이 외롭길 원하지요. 신성함에 다다르기 위해 고독이 필요하다면서 말이지요. 고독 속에 있을 때 유혹이 가장 강력하다는 것을 모르면서 하는 말이에요.”
“부인, 무슨 말씀이신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 차라리 그게 더 나아요. 하던 일이나 계속하세요.”[p39]
– 아우라의 입술을 향한 허기진 입맞춤은 흥얼거리던 멜로디를 잠식하고, 그녀의 어깨와 가슴에 퍼붓는 성급한 입맞춤은 춤을 어디엔가 가두고 말아.[p48]
콘수엘로 부인의 죽은 남편의 비망록 세 번째 뭉치를 챙겼을 때, 아우라와의 잠자리에서 노파와 아우라가 겹친다. 그러면서 비망록의 주인인 노파의 죽은 남편과 펠리페 자신은 동일시된다. 작 중 아우라와 노파가 같은 행동을 처음 했을 때 정신병을 생각했었다. 펠리페에게 정신병이 있구나 하고. 그 때문인지 작품을 읽고 난 후에도 가장 크게 드는 생각은 알츠하이머 치매다.
펠리페와 콘수엘라 부인, 그녀의 젊음으로의 집착과 욕망이 만든 아우라와 존재했는지 아닌지 모를 비망록만 남긴 남편. 네 인물이 현실과 환상 사이에 놓여 어렴풋이 느낌만을 줄 뿐인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실재인지 혼란스럽다. 펠리페가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리지 않았다면, 펠리페는 실존하는지. 콘수엘라 부인의 아우라에 대한 집착이 펠리페 또한 만들어낸 것인지. 그래서 모든 게 다 콘수엘라 부인의 집착이 만들어낸 환상인지.
무엇이 되었든 독특한 화법이 너무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