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진 않으나 섬세한 일련의 문장들에 말려들었다.
민음북클럽 신청할 때 고른 책으로, 제목만 보고 골랐다고 설명한 바 있다. 내가 브람스를 좋아해서(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좋아한다기보단 궁금했던 것 같지만) 골랐으므로 요하네스 브람스가 아니라면 낭패라고도 말했다. 다행히 제목의 브람스는 그 브람스가 맞았으나, 음악의 흥취를 다루는 등장인물들의 서사이길 바랐던 내 희망과 달리 주인공들의 미묘한 감정선을 다루는 소재로만, 그 마저도 단 한 장 언급 되었다. 그렇다면 왜 브람스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작품 해설에 나와있는데, 폴과 시몽의 관계를 볼 때 이 유사성은 브람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으며 또한 대부분의 프랑스인이 브람스를 좋아하지 않는 사실로부터 이 아련한 질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모차르트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과 달리 울림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런 류의 조용하면서도 침울한 결말을 좋아하지만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다. 왜 그런 쓰레기를 버리질 못하는지… 나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서른아홉 살이 아니기 때문인가. 나는 시몽처럼, 누군가에겐 열다섯 살의 소년으로 보일만큼 어리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인가. 사실, 이해할 수 없다고 하기엔 무언가 폴의 감정에 이끌리는 부분이 있는 건 분명하므로 머리로는 아니야, 그게 아니라고- 하면서도 가슴으론 조-금 이해하는 구석이 있는듯하다. 폴이 그랬을 테고 그녀는 결국 마음의 손을 들어준 거겠지. 그러면서 나 같은 시몽파 독자에게는, 페라리가 있는데도 그걸 등한시하면서 초록 표지판을 달고 있는 구형 아반떼는 왜 타고 다니느냐는 답답한 물음만을 선사하는 거고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