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인간상, 인간 내면의 이중성을 직면하게 하는 단편들이 가득하다.
<코>
큰스님은 긴 순대모양의 특이한 코를 가졌다. 긴 코가 근심이었던 그는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코만 보았다. 코의 크기를 줄이는 비법을 알게 되어 코를 짧게 만들지만, 사람들은 스님의 짧아진 코만 보면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코가 길었던 얼마 전을 떠올리며 ‘지금은 더없이 비천해져 버린 사람이 영화롭던 옛날을 그리워하듯이’ 풀이 죽어버렸다.
<마죽>
오위는 하급 사무라이다. 볼품없는 생김새, 보잘 것 없는 풍채를 지녀 아이들조차 그를 무시한다. 그는 사람들의 괴롭힘에도 “안되겠구만, 자네들”로 대꾸할 뿐이다. 그 얼굴을 보고 그 소리를 들은 이들은 누구나 한순간 일종의 안쓰러움을 느끼고 만다. 그의 욕망은 일년에 두어 차례 먹는 ‘마죽’을 실컷 먹는 것이다. 마죽을 실컷 먹여주겠다는 사무라이를 따라 산 넘고 강 건너 도착한 그곳에서 오위는 열 솥도 넘는 마죽을 보며 먹기도 전에 질려버린다.
갖지 못한 것, 혹은 갖기 어려운 것을 욕망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 두 단편은, 욕망을 충족했을 때 만족스러움에 빠져드는 게 아니라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그때’를 도리어 그리워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준다. 짧은 코를 가질 때, 마죽을 먹을 때 느끼는 만족감은 일시적이라는 것. 일시적인 것은 비단 욕망하는 인간의 마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부당한 대우에 제대로 화조차 내지 못하며 “안 되겠구만, 자네들”로 대꾸하는 오위에게 일종의 안쓰러움을 느끼는 마음도 인간의 본성이나, 그 역시 한순간일 뿐이다. 한순간 그런 마음이 들었다가도 또 그런 마음이 삽시간에 사라지는 게
사람이니까.
<라쇼몬>
교토에 불어닥친 재난으로 쫒겨난 하인이 버려진 성에 들어온다. 성문 라쇼몬은 여우와 도둑이 들끓고 시체를 버리기도 하는 곳으로 전락했다. ‘도둑놈이 되는 수밖에 없다’ 는 사실을 긍정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그는 죽은 자의 머리카락을 뽑는 노파를 보게 된다. 굶어죽지 않으려고 어쩔 수 없이 그랬다는 노파의 말을 듣던 그는 전에 없던 용기가 생겨났다.
<엄마>
한 여자가 폐렴으로 아이를 잃었다. 아이를 잃은 여자가 이웃 여자의 아이를 괴로우면서도 사랑스런 표정으로 바라본다. 아이를 잃은 여자를 바라보는 이웃 여자는 동정하면서도 젖가슴 아래에서부터 왕성하게 솟아오르는 자랑스러운 감정은 어찌할 수 없었다. 얼마 뒤 이웃 여자도 아이를 잃는다. 그 소식을 들은 여자는 죽은 아이의 영면을 기원했지만 눈에도 입술에도 미소가 흘렀다.
인간의 마음은 때로 전혀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시체의 머리카락을 뽑는 노파의 행동을 ‘용서할 수 없는 악’으로 여겼던 사내는 마음에 일었던 ‘용기’를 오용하여 노파의 옷가지를 빼앗고 사라진다.
한편, 인간은 타인의 불행을 동정하지만 동정의 이면에는 자신은 불행하지 않다는 자신감이 도사리고 있다.
또한 불행한 인간은 자신의 불행이 가져다준 상대의
자신감을 읽기에 다른 이도 함께 불행해지기를 바란다.
<흙 한덩이>는 아들과 남편을 잃은 후의 고부 이야기다. 며느리는 재혼을 권하는 시어머니를 만류해 남자 몫까지 부지런히 일한다. 묘사된 며느리는 목로주점의 ‘제르베즈’와 닮았고, 고래의 ‘금복’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점점 살림을 불려가는 며느리를 칭찬하던 시어머니는 곧 집안일에 매어 쉬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불만을 품고 손자와 이웃에게 며느리를 험담한다. 장티푸스에 걸려 죽은 며느리를 묻고 잠든 밤, 시어머니는 아들도 며느리도 자신도 한심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나쓰메 소세키가 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작품을 극찬했는지, 아쿠타가와 상을 제정해 기릴 만큼 왜 그의 작품이 문단의 인정을 받는지 나는 이 책을 읽고 이해했다.
설화와 기담을 차용한 흥미로운 우화부터 인간의 어리석음과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이야기들까지, 읽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다. 한 사내가 어떻게 마죽을 실컷 먹게 되었는지, 어느 가문의 가보가 된 지옥변 병풍의 유래는 무엇인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글머리는 어린 시절 유치원에서 듣던 그림동화처럼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