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세계문학전집 166 | 일연 | 옮김 김원중
출간일 2008년 1월 2일

문왕 대의 고승 경흥은 성이 수씨고, 웅천주 사람이다. 열여덟 살에 출가하여 삼장에 통달하니 신망이 두터웠다. … 어느 날 경흥이 궁궐로 들어가려 하여 따르는 자들이 미리 동쪽 대문 밖에서 준비했는데, 말과 안장이 매우 화려하고 신과 갓도 매우 성대했으므로 길 가던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며 물러났다. 이때 행색이 초라한 거사가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등에는 광주리를 지고서 하마대 위에서 쉬고 있었는데, 광주리 안을 들여다보니 말린 물고기가 있었다. 경흥을 따르는 자가 꾸짖었다.
“당신은 승려로서 어찌 계율에 어긋나는 물건을 지고 다니는가?”
거사가 말했다.
“양쪽 다리에 산 고기(馬)를 끼고 있는 것에 비하면 등에 말린 물고기를 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 형오할 일인가?”
거사는 말을 마치고 나서 일어나 가 버렸다. 경흥은 문을 나서다가 그 말을 듣고는 사람을 시켜 따르게 했다. 거사는 남산 문수사 문 밖에 이르러 광주리를 버리고 사라졌는데, 짚던 지팡이는 문수보살상 앞에 세워져 있고 말린 물고기는 바로 소나무 껍질이었다. 심부름 갔던 사람이 와서 보고하니, 경흥이 듣고 탄식했다.
“문수보살이 와서 내가 말을 타고 다니는 것을 경계한 것이구나.”
그 뒤로 경흥은 죽을 때까지 말을 타지 않았다.

– ‘경흥이 성인을 만나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