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을까.
2차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고 혼란한 사회속에서 살았다고 할지라도 그가 작품속에서 나타내는 우울,삶에 대한 비관,인간에 대한 조소등은 매우 흥미롭다. 다른 사람들이 나타내는 우울과는 달리 좀 더 심층적이며 논리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허무가 세상의 끝까지 나아간 사람이다. 이 책의 남동생 나오지가 나는 그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자이 오사무는 5번의 자살시도 끝에 삶을 스스로 마감하였다. 다자이 오사무는 귀족의 지위에서 천민으로 하락한 상황을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한 나오지처럼, 패전의 상황의 허무하고 고통스러운 순간, 혼란의 시대를 적응하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의 상념과 혼돈에 빠져 그토록 죽음을 염원했던 것은 아닐까.
살아있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
아아,이 얼마나 버겁고 아슬아슬 숨이 넘어가는 대사업인가!
그는 삶을 버텨나가는게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까. 내 평생 겪은 우울을 다 합쳐도 그가 하루동안 겪은 우울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음침한 탄식의 한숨이 사방에서 들려올때, 자신들만의 행복따위가 있을리 없잖아? 자신의 행복도 영광도 살아있는 동안엔 결코 없다는 걸 알았을때,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
누나, 안되겠어. 먼저 갑니다. 난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그걸 도무지 알 수 없어요. 살고 싶은 사람만 살면 돼요.
어째서 다 ‘똑같다’고 말하는가. 월등히 낫다고 말하지 못하는가. 노예근성의 복수. 이 말은 사람들이 서로 겁먹고 모든 사상이 능욕 당하고 노력이 조소당하고 행복이 부정되고 외모가 더렵혀지고 영광이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소위 ‘세기의 불안’은 이 신기한 한마디에서 나왔다고, 나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