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78.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2778.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9.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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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것은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은 부정적이다.“ 철학자 파르메니데스는 ‘가벼운 것이 나쁜 것인가?’, 또는 ‘가벼운 것이 부정적인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위와 같이 대답했다.

물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통해 작가 밀란 쿤데라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 단지 철학자 파르메니데스의 답처럼 가벼운 것이 마치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의 밀란 쿤데라가 던진 ‘존재의 무게’에 대한 질문이야말로 우리가 생의 시작부터 그 끝에 이르기까지 결코 간과할 수도 그렇다고 쉽게 답을 낼 수도 없는 가장 어려우면서도 항상 우리와 함께하는 본질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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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격돌하던 시기의 체코를 배경으로 네 명의 남녀가 서로 다른 신념과 철학으로 삶을 대하며 사랑하는, 또는 그저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통해 ‘존재의 무게’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이야기하고 더불어 결코 쉽게 풀리지 않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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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시의 삶은 늘 여인들과 함께였다. 흔한 바람둥이와는 또 다른 유형의 바람둥이라 할 수 있는 토마시는 나름의 철학으로 여인들을 대했다. 그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이며 그 원칙이 깨어짐을 결코 바라지 않았다. 적어도 우연이 여섯 번 겹치며 인연이 된 테레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그는 이혼 이후 독신주의자의 삶을 살아가며 수많은 이성을 대했지만 그것은 오직 관능을 위한 행위로서의 가벼움이 깃든 만남은 아니었다. 물론 가벼움으로 귀결될 일이었으나 적어도 그는 여성 고유의 자아를 찾고 그들만의 개별성을 인식하며 만남을 거듭했다. 그에게 관능이란 그러한 관계 속에 그저 덤으로 따라오는 부록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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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토마시의 신념에 갈망을 준 여인이 바로 테레자다. 토마시가 정적이라면 테레자는 동적이다. 현실을 도피하고 싶었고 신분 상승을 위해서라면 고향도 직장도 친구도 버릴 수 있던 테레자에게 삶의 큰 모순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육체와 영혼이 갖는 이원성에 대한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동적 도구로 쓰인 테레자였지만 사랑에서 만큼은 자신의 영혼도 육체도 오로지 토마시에게만 보여 지기를 바랐던 것 같다. 테레자에게 육체란 여실히 영혼을 그대로 표출하는 일종의 도구였다. 때문에 ‘현실 도피’나 ‘신분 상승’이라는 목표 안에서도 육체를 온전한 도구로서 사용치 못하며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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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앞선 토마시와 테레자 외에도 전체주의를 경멸하던 화가 사비나와 그를 숭배했던 대학교수 프란츠의 이야기를 통해 네 명의 남녀가 사랑하며 살아가는 방식과 그들이 느낀 갈등, 갈망 그리고 선택을 통한 인생의 종착점을 보여주며 밀란 쿤데라가 말하는 ‘존재의 무게’에 대하여 묻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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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대단한 이유는 단순히 네 명의 남녀를 통해 멋진 로맨스를 그려서도 아니고 그 전체를 아울러 역사와 시대와 배경을 함께 잘 그렸기 때문도 아니다. 또는 이야기가 이어지는 중간중간 소설로서가 아닌 마치 한 편의 에세이를 읽듯 작가의 생각을 적나라하게 풀었음도 아니다. 그 모든 것이 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음에도 그 보다 더 이 소설에 빠져든 이유는 가벼운 소재에 무거운 질문을 담아 깊게 답할 수 있었던 사유 덕분이다. 단언컨대 나는 태어나 단 한 번도 이런 느낌의 문학을 경험해 본적이 없다. 이 책을 읽고 밀란 쿤데라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나는 ‘철학자’라는 표현을 덧붙이고 싶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문학이란 장르를 넘어서 철학서로서의 가치를 담았다. 이 소설은 사랑하는 이들을 로맨스로 풀어내며 지나간 불온전한 세계에 대해,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그리고 그가 말하고 싶었던 철학에 대해 몇몇 인간의 삶에 대해 깊숙이 들어가 가볍게 풀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소설이 아니라 교과서다. 그는 우리의 마음 깊숙이 침투하여 귓전에 말한다. “가벼운 것은 긍정적인 것이고, 무거운 것은 부정적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