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6.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1656.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일본 데카당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는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친 일본 작가들이 가장 존경하는 작가로 꼽은 그러니까 작가 중의 작가 정도로 볼 수 있는 대단한 인물이다. 안타깝게도 일생동안 다섯 번의 자살 시도 속에 서른 아홉이란 이른 나이, 결국 다섯 번째 자살 시도가 성공하여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난 불운의 천재이기도 하다.

.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아직 작품 해설서는 읽지 않았으나 너무나도 자전적인 소설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일생을 간략하게 나마 작가 소개를 통해 읽은 후 접한 <인간실격>의 내용이 만약 자전적 소설이 아니라면 대체 어떤 소설을 자전적이라 할 수 있을까.
보통의 소설과 다르게 2인층 시점에서 바라보고 1인칭 시점에서의 수기로 삶을 보여준 후 다시 2인친 시점으로 돌아와 끝을 맺는 이 소설은 서문과 세 개의 수기, 마지막 후기로 완성된다.
보통의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근접할 수도 없었을 요조의 순수함은 오히려 그의 일생 자체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었던 것 같다. 인간 알러지 – 나는 그렇게 표현한다. – 가 누구보다 심했던 요조. 불행 중 다행히도 스스로가 보통의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익살’이라는 재주로 자신을 포장하여 특별할 것 없는 하루, 하루를 자신도 모를 파멸을 향하여 나아간다.
버린 것인지 버림을 받은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을 가족들과 친구라는 말을 사용하기에는 분명히 고민의 여지가 있을 호리키, 어떤 이득에서 인지 요조의 주변을 돌며 그의 삶을 정리해주는 넙치, 그리고 이야기 내내 끊임 없을 그의 연인들.
.
서문을 읽으며 나는 여느 때보다 독서를 한다는 기대감과 설레임에 부풀어 있었다. 뭔가 기괴한 이 느낌. 이런 느낌을 이렇게나 빨리 전달을 하다니 참으로 글을 잘 쓰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나는 이미 요조가 쓴 세 개의 수기를 모두 읽고 마지막 장인 후기를 남겨두고 있었다. 앉은 참에 후기까지 쉬지 않고 읽어내린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이것은 일종의 정신 파괴다. 정신이 파괴되니 육체라고 멀쩡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범주에는 참 많은 것들이 속해있다. 그 중에는 영화나 게임도 있고, 사진이나 그림도 있고, 당연하지만 문학도 포함되어 있다. 나는 예술을 그리 어렵게 받아들지 않는다. 나에게 예술이란 감정 싸움이다. 어떠한 작품(위에서 말한 영화, 사진, 문학 가릴 것 없는 모든 예술 매체)을 받아들이며 내 감정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면 그것은 충분한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
때문에 나는 예술적인 어떤 것들을 받아드릴 때에도 당연히 나의 감정에 귀기울이는 편이다. 그런면에서 이번 <인간실격>은 백점 만점이다. 감정의 폭이 두꺼운 나 같은 사람이 이 책을 읽고 이틀이 넘는 긴 시간동안 움직인 감정이 되돌아 오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
<인간실격>을 읽는 내내 느낀 점이라면 ‘나는 왜 사는가?’ 그래서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그러니까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그런 점이 더 없이 좋았다. 내가 독서를 취미로 하는 가장 큰 이유중 하나가 바로 위의 질문에 대답을 구하기 위해서다.
요조의 수기를 읽어 내려가며 나는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럼 ‘나는 누구지?’ 그렇다.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 속에서 나는 나의 위치를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요조는 내게 공감과 이질 그 중간 어디쯤에 있었던 것 같다. 아주 정확히 공감되는 표현이다. 때문에 나는 어느 순간 요조이기도 했고 호리키 이기도 했으며, 넙치 였고, 몇몇 연인들 이기도 했으며, 요조가 저주하는 인간 군상의 하나였던 것 같다.
.
그냥 좋다. 너무 좋다. 죽는 그날까지 수십, 수백 번을 읽어도 모자를 만큼 좋다. 내 독서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무라카미 하루키 보다도 조금 더 좋았다. 너무 좋아서 그러니까 그 좋음이 순수할 만큼 너무 좋아서 오히려 서글프기까지 했다.
그러니 읽어야 한다. 이유를 불문하고 읽어야 한다. 읽고 느껴야 하고 되물어야 한다.
우리는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