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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에게 고전과 신화이야기는 힘을 잃은 듯 보이지만, 여전히 여기저기에 살아 숨쉬고 있다. 티비나 영화, 책을 읽으면서 ‘이거 어디선가 본것 같아!’ 하는 느낌이 들때, 고전이나 신화의 변주인 경우가 많다. 변주에 변주는 거듭되고 우리 삶에 끊임없이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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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여인>은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 운명이라는 단단한 바탕을 깔고 신화를 훌륭하게 변주한 이야기이다. 변주라기보다는 현대적인 재현에 가까운것 같다.
젬은 30년전, 우물파기 일을 하며 겪은일을 회상한다. 아버지가 떠난 후 우물파기 일을 하며 만난 우스타에게 깊은 유대감을 느끼고, 극단에서 연기를 하는 빨강머리여인에게 강렬하게 이끌린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기에 경험한 일들은 평생 젬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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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보면,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젬의 비극적인 삶을 그린 것 같지만… 사실 어린시절 자신의 의지로 한 행동에서 비롯된 일들이 삶을 이끌어 간 것이었다. 젬이 끝내 알지 못한 비밀들, 그의 삶은 운명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의지와 그에 따른 죄책감으로 이루어졌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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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계속해서 <오이디푸스 왕>과 <왕서>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데, 동양과 서양의 신화가 비교되고 결합되어 가는것이 꽤나 흥미롭다. 동서양의 신화를 대하는 진지하고 비밀스러운 태도와 주인공의 이야기가 섞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게 참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쉽게 읽히는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자꾸 이끌리듯 읽게 되었던 것은… 어려운 이야기를 탁월하게 이끌어가는 글의 힘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