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박물관에서 34년을 근무했고 <공재 윤두서>, <백제미의 발견> 등 한국미술 연구서까지 낸 저자라는 소개를 보고 문화재를 보는 안목이나 전문지식에 대한 책으로 예상했는데 완전히 빗나갔다.
자신의 젊은 시절 짧았던 안목이 성장해온 자서전, 에세이 같은 이 책에서 저자는 문화재들과 작품, 풍경, 사건, 추억, 그동안 만난 사람들과 함께 안목이 성장해온 이야기를 담았다.
이런류의 글들은 아무나 썼다가는 일기장이나 SNS 공유글이나 될 정도의 아주 시시하고 뒤적거리다 말 확률이 높은데 저자의 안목과 인품의 깊이가 글의 향기로 베어나와 오늘 같은 날 글들이 쫙쫙 달라붙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한국의 1세대 산업디자이너로 꼽히는 정준을 비롯해 다산 정약용 연구를 개척하고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을 내건 선각자 이을호, 금동반가사유상을 현대의 감각으로 포착해 낸 프로 사진작가 준초이, 아름다운 풀꽃과 미술 전시가 어우러진 풀꽃 갤러리 ‘아소’를 운영하는 주인아주머니, 깨달음에 이르는 방편으로 사진 예술을 택해 격조 높은 작품을 남긴 관조 스님까지 그들과 저자의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백로 무리를 감상하는 까마귀가 된 느낌^^
39p 서양에서는 유물을 만지고 움직이고 보관하고 포장하고 운송하는 일련의 방법이 하나의 방대한 학문적 영역을 이룬다. 유물 다루기에 관한 무수한 논문과 저서가 나와 있으며, 하나의 그림 액자, 예컨데 모나리자의 포장 방법도 중요한 학술 논문 주제이다. 로댕의 조각 작품 칼레의 시민을 운송했던 기술 또한 중요한 학술 논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