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는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울었다고 했다. 느끼는 게 많았다고 했다. 정말이냐고도 물었다.
87년생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별거 없네”라고 생각했다. 있는 이야기 있을 법한 이야기. 오히려 아무일이 없는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언제나 겪어왔던 이야기. 내가 겪었던 삶은 지영씨의 서사보다 더 심하고 무서운 사건들로 범벅되어있다. 그런데 또 내 이야기는 내가 만난 대다수의 그녀들에게는 다행이며 비교적 평탄한 이야기다. 어쨌든 난 칼든 강도를 물리쳤고, 치한으로부터 도망쳐나왔으며, 데이트 폭행이나 가스라이팅은 겪지 않았으니까.
결혼-출산-육아을 거치며, 지영씨는 그나마의 자기 삶의 통제권도 다 잃는다. 그것은 비극이 아니다. 그냥 으레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소설 속의 아내는 맘대로 되는 일은 이것 밖에 없다며 수학문제를 푼다. 꼭 수학문제만은 아니겠지. 내 삶이 내 삶같지 않을 때 하루 꼬박 어른용 색칠 공부를 한 경험이 있다.
결혼을 해야한다, 고 생각하고 있다. 또래의 친구, 동료들이 다 그 삶의 수순을 밟아가는 중이고. 그런데 나는 무섭다. 걱정된다. “다 저절로 되게 되어 있어.” 라고 많은 결혼한 언니들은 말하지만, 그 저절로에 포함된 사랑이라는 것의 능력치가 내게 있다고 생각되어지지 않는다.
엄청 힘들지만 또 엄청 행복하다!라는 증언에서 나는 이상하게 “힘들다”만 들린다. 그러니까 인생이 지금도 충분히 어려운데 여기서 더? 행복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만 힘들고 싶다.
지영씨의 삶이 특별하거나 소설로 다룰만큼 대단한 서사가 있었다면 차라리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영씨가 될리 없는 누군가들은 눈물을 흘리고 느끼는 게 많은 정도가 다 인 좋은 책이겠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에게는 현실보다는 덜한 공포 소설이라는 것도. 적어두고 싶었다.
꿈 속에서 지영씨를 비롯한 많은 언니들과 엄마들의 삶이 둥둥 떠다녔다. 오지 않을 걱정을 사서하는 것 일거야, 다스려보려 했지만 불안을 이길 만한 어떤 단서도 발견할 수 없다. 너무 복잡하다. 선택을 결단할 용기가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