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와일드 작품선 중,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여기, 한 소년이 있다. 모든 사람이 그의 외모를 향해 찬사를 보낸다. 그야말로 아름다움이 성숙해져 만개한 형상이다. 아직 피지 못한 봉우리들은 그를 시샘한다. 살결은 고와서 한낮의 신선한 햇빛을 생각나게 한다. 붉은 입술로 종알대는 모습은 어떠한 거짓말도 용서할 수 있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이 소년의 이름은 도리언 그레이. 뭔가 설명하지 못할, 모든 사람을 매혹시키는 매력의 그는 한 시대가 조각한, 단언컨대 최고의 걸작이다. 발칙한 이 소년에게, 당신은 유혹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아름다운 살인자, 도리언 그레이
벌써 두 번째 핏방울이다. 그의 다음 칼이 어디로 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소설 속 주인공 ‘도리언’은 잔인하고 타락했다. 그는 자신의 애인 시빌 베인을 폭언으로 죽이고, 자신의 초상화를 그린 바질 홀워드는 칼로 죽인다. 이 모든 불행의 씨앗은 화가인 바질 홀워드가 그린 도리언의 초상화였다. 초상화가 자신 대신 늙길 바라는 비현실적인 그의 소망이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도리언은 젊음의 미를 쟁취하기 위해 퇴폐적인 만행을 저지른다. 셰익스피어는 사랑을 ‘분별력 없는 광기’라고 정의했다. 도리언은 자신의 눈, 코, 입술, 몸의 곡선만을 사랑한 ‘순애보’ 청년이었다. 충분히 이해 가능한 외모와 매력이었다. 문제는 그 사랑이 셰익스피어가 이야기한 ‘분별력 없는 광기’였다는 것이다. 무(無)를 향한 끝없는 사투는 결국 공허만 남겼다. 그는 바질 홀워드를 죽인 칼로 자신을 찌른다. 그는 죽음으로써 추악한 늙음을 하사받는다. 사후가 더 괴로운 생(生)이었다.
◆유미주의 선구자, 오스카 와일드
작가인 오스카 와일드는 19세기를 평정했던 철학가이기도 했다. 그는 유미주의의 선구자로서, 미적가치만이 최고의 가치라는 세계관을 설파했다. 그는 악(惡) 역시 미(美)의 일부분으로 보고 숭배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단어는 유미주의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오스카 와일드가 우리에게 남긴 숙제는 무엇일까. 애써 잉태했던 도리언 그레이를 파멸시키면서까지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유미주의는 그가 이 세상 모든 악까지 사랑하려고 한 박애주의자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최후의 심판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리고/우리가 반암의 무덤 속에 누워 있을 때/로비, 나는 자네에게 몸을 돌리며 속삭이겠네./로비, 우린 저 소리를 못 들은 체 하세라고” 오스카와일드의 묘비명은 그가 얼마나 인생을 시원시원하게 살았는지 보여준다. 자신을 막는 억압까지 사랑한 오스카 와일드. 와일드라는 그의 이름처럼, 그는 사회의 거대담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야생을 구축한 조상이었다.
◆‘곱게’ 늙는다는 것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시인 로스케가 말한 허언이 진리가 될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아직까지는 젊다. 소설을 읽다 보면 ‘젊음이 그렇게 좋은 것인가?’라고 자문하게 된다. 하긴, 그동안 우리는 많은 매체에서 젊음을 신성한 메시아인 듯 형상화하는 것에 지쳐있었다. ‘은교’, ‘밀회’ 이것들은 젊음을 조악하게 탐닉하는 것을 예술로 승화한 대표작들이다. ‘죄는 얼굴에 드러나기 마련이라 감출 수가 없네. 어떤 비열한 인간이 악을 행했다면 입술 선이나 축 처진 눈꺼풀, 손 모양 같은 데에 저절로 나타나는 거지.’ 그렇다. 늙음은 단순한 외형적인 붕괴가 아니다. 그동안 쌓아왔던 젊은 날의 행위가 보상받는 재판의 결과다. 그렇기에 젊은이들도 늙은이가 될 수 있다. 선악의 재판은 유효기간이 없다. 날짜도 정해져 있지 않다. 그 결과는 주름의 개수로 나타나기에 잔악하다. 작가는 ‘늙음’이 시간의 병렬로 이어진 형벌이 아니라, 행위의 선악에 대한 처벌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 행위의 뿌리는 외면이 아니라 내면이다. 곱게 늙은 사람을 보면 찬탄만 나온다. 살아오는 나날 동안 얼마나 많은 왜곡과 불신으로부터 자신의 미(美)를 당당하게 지켜왔는지 감히 예감할 수 없다. 그들은 자그마한 움직임에도 비장함이 흘러내린다. 세상 이치에 순응했기 때문일까. 하지만 도리언은 완벽한 외양(外樣)에도 마음이 가질 않는다. 그의 완벽한 피부 결에서 추악한 욕망이 느껴지기 때문일까.
◆우리는 죽어야만 한다
어찌 됐든, 우리는 끝내야만 한다. 진실로, 우리는 죽어야만 한다. 도리언은 이미 존재만으로도 ‘문제작’이다. “가식이 그렇게 끔찍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가식은 각자의 개성을 돋보이게 하는 하나의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하는 도리언이야말로 시대가 응징해야 할 ‘가식’의 최전방 전사다. 도리언은 미모는 가졌어도 내면의 영원성은 추구하지 않았다. 이것은 도리언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 모두가 짊어져야 할 그림자다. 허영이 몇 년을 걸쳐 억겁이 된다면 필히 진실의 태양을 가리고 말 것이다. 우리는 죽어야만 하는 존재이기에, 죽을 때까지 내면과 외면, 죽음과 삶, 젊음과 늙음의 특성에 대해 고민해야만 한다. 어느 쪽이 고귀할 것인가. 이 미제들을 이제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만 죽어서도 아름다울 수 있다. 늙음은 젊음 못지않은 특권이다. 보라, 철자 마지막에 새겨진 도리언의 시체에서는 악취가 난다. 한 인간의 고결성을 유지하며 죽음에 도달하는 것은 주름의 여부에 달려있지 않다. 수많은 철자를 통해 묘사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한 화가의 수채에서 탄생한 일개 그림이지만, 사실 이것은 우리들의 형상을 관능적으로 드러낸 이 시대의 진정한 초상이다. 이 대서사의 끝에서 불쌍한 청년 도리언의 칼끝이 당신을 향했다고 느껴졌다면, 제대로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