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란 무엇인가. 그것은 개인의 판단이다. 가치는 사실과 달라서, 지향과 지양은 있으나 옳고 그름은 없다. 그렇기에 모든 가치는 철저히 부정될 수 있다. 소설이란, 부수는 행위이기에 가치가 부정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소설은 가치를 부정하는 과정으로 모두 귀결되는가. 그것은 아니다. 이것은 수단이다. 전통의 가치를 지향하며 커다란 집에서 많은 아이를 낳고 살고 싶어했던 두 부부의 가치의 부서진 잔해가 소설의 끝이 아니라는 뜻이다. 소설은 부수는 것이 아니라 부서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다.
데이빗과 해리엇이 무리하여 4층짜리 저택을 사고, 아이를 낳고, 또 낳고, 또 낳는 과정동안 소설에 불안한 기류는 끊임없이 몰려온다. 처음부터 끝까지 서술자는 그들의 행복을 의심하고 흔든다. 다섯째 아이 벤이 태어나기 전까지 화목과 평화가 감도는 대저택에서의 행복 속에서도 그 의심은 너무 확고해서, 서술자의 태도가 반전을 위한 장치는 아닐까 생각하게 될 정도이다. 어쩌면 단순한 구성으로 보일정도로 확고한 서술방향은 소설의 불안함을 게속해서 증폭시킨다. 이 불안감이 다섯째 아이인 벤을 만나는 순간, 폭팔이 일어난다.
60년대 미국의 자유로운 분위기, 개방의 분위기를 부정하고 비판하는 데이빗과 해리엇의 위치는 이야기들이 어떤 가치를 부정할 때 가지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부정의 부정을 한다. 부정에 대한 부정은 처음부터 확고한 자세여서, 그 흔들림을 의심하게 한다. 하지만 작가는 흔들리지 않는다. 흔들림으로서 얻을 효과보단, 흔들리지 않음으로써 얻을 공포를 선택하였다.
벤을 묘사하는 방식이나 일어나는 사건이 최선으로 좋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두 부부의 가치가 무너지는 방식이 원시적이고 야생적이라 한정되는 벤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했을까. 오히려 강력한 서술을 지우고 주인공의 시선만을 남겨 ‘진짜 벤이 어떤 사람일까’ 독자들이 상상하게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벤과 함께 발생되는 그 섬직함, 그것은 엄청났다고 말할 수 있다. 책의 묘사가 어마무시해서 게속해서 독자인 나의 등을 확인하게 만든다.
내가 이 소설을통해 무엇을 얻고 생각했는지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벤과 대저택의 이미지는 계속해서 내 머릿속에 남아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