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뜻은 향기를 내는 바로 그 ‘향수’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향수’는 고향을 그리워 하는 마음의 그 ‘향수’다. 이 책에서는 체코가 공산주의 집권 하에 들어가면서 파리와 덴마크로 망명한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를 보여 주면서 향수에 대해 말하고 있다.
1989년 체코에서 공산주의가 물러나게 되면서 망명한 여자와 남자는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마음 속에서 자신들도 모르게 은밀히 감춰져 있던 그런 두려움들이 실제 현실로 나타난다. 여자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20년이라는 세월의 긴 공백이 자신과 그들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자신이 파리로 떠나있던 20년 동안의 생활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 점이나 변화된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한편 남자도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 공동 묘지에 들렀다가 장례 소식 조차 듣지 못했던 가족들의 이름이 묘지에 써 있는 것을 보고 어떤 괴리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그들이 망명했기 때문에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 그들이 고향에 대한 향수를 느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들 당사자 보다도 주변인들로 하여금 만들어지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책 중간중간 「오디세이아」의 내용이 등장하는데 직접 읽진 않았지만 책에 언급된 내용으로 보면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으로 인해 고향을 떠난 이후 내내 고향을 그리워 하다 20년 만에 귀향하지만 돌아갔을 때는 자신이 그리워 하던 그 고향이 아니었던 것이다. 본인은 고향을 그리워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돌아가보니 그 무엇도 마음속으로 그리워 하던 것과 닮아있는 것이 없는 허무한 현실. 낮이 되면 고향을 그리워 하지만 밤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악몽을 꾸는 아이러니 같은 것 말이다. 흥미로운 모순인데 이타카 사람들은 오디세우스에 대해 많은 기억을 갖고 있었으나 어떤 향수도 느끼지 않았고, 오디세우스는 이타카에 대한 향수병으로 고생했지만 그곳의 어떤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는 말이 나온다. 작가는 향수가 강하면 강할수록 추억은 사라진다고 말하는데 이유는 기억이라는 것은 훈련되어야 하는데 고향의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면서 그 기억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P.38 향수는 기억의 활동을 강화하거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 만족하며, 아무리 커다란 고통에 빠져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감정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작가는 「오디세이아」와 관련하여 ‘사람들은 페넬로페의 고통을 찬양하고 칼립소의 눈물은 비웃는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에서도 보여지듯 사람들은 페넬로페가 고향에서 떠나간 오디세우스를 생각하는 마음의 고통은 찬양하면서, 떠나간 타지(이 책으로 말하자면 망명한 도시)에서 만난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와 7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냈음에도 고향으로 돌아간 오디세우스를 그리워 하는 눈물을 비웃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보여지는 것이 바로 주변인들이 생각하는 향수가 아닐까 생각한다.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주인공이 느끼는 또 한가지가 이 부분과 닮아 있는데 망명한 곳에서 만난 이들을 새로 사귄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에게는 그저 불쌍한 망명인일 뿐이라는 것이다. 체코에서 공산주의가 물러간 후 친구라고 생각했던 그들은 왜 너희 나라로 돌아가지 않느냐고 말한다. 왜 감동에 북받쳐 눈물 흘리지 않는 것인지 의아해 하는 그들에게 망명자는 망명자일 뿐이고 영원한 이방인인 것이다.
‘오디세우스’의 이야기와 이 「향수」라는 책이 접목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중간중간 많이 등장한다. 그 외에도 이해가 잘 안되는 어려운 부분이 나오는가 싶으면 작가가 개입하여 설명하는 부분이 등장하기 때문에 쉬운 듯 친절하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결론적으로는 어렵다. ‘밀란 쿤데라’의 스타일인 듯 한데 문장 자체가 다소 난해하고 지칭하는 대상이 확실치 않게 느껴지는 문장들이 꽤 있어 천천히 생각하며 읽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밀란 쿤데라’의 작품으로는 처음 읽게 되는 작품인데 하나의 작품 만을 읽었을 뿐이지만 작가의 스타일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나니 그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어떤 책일 지도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