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한 디자인과 전집이라는 것에 책욕심많은 저는 소장하고 싶다라는 단순한 생각을 먼저 했던 책입니다. 그러나 고전을 많이 접해보지 않았고,이제서야 조금씩 읽고 있어서 읽지도 않는, 혹은 읽다가 포기해버리는 그야말로 소장용 책이 될까봐 고민하고 있던 책이기도 했습니다. 정체성이라는 제목부터 어렵고 난해할 것 같다라는 느낌이 무겁게 다가왔지만 책 소개를 보고는 조금 의외였습니다. 흥미로움이 생겨서 바로 읽기 시작했죠.
이혼하고 연하의 연인과 살고 있는 그녀는 자신이 늙어간다는 사실에 슬퍼하면서 ‘아무도 더 이상 날 쳐다보지 않아’라고 연인에게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익명의 편지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그 남자는 그녀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 과연 그 편지를 받은 그녀의 반응은 어떨지, 그 둘의 관계는 어떻게 될지 흥미진진하고 기대되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 시작은 저도 그 남자와 함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무엇인가 몰래본다는 흥미로움이 있었지만 조금 있으니 연인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않는 그녀를 보면서, 편지의 존재를 그가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가 알게되면서, 그리고 그가 바로 그 편지를 보낸 사람이였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이건 뭔가 잘못됐구나 하는 생각에 긴장되고, 조마조마했습니다.
그 남자는 그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시작했지만 나중에 그 사실을 먼저 알게된 그녀는 그 남자가 자신을 떠나기 위해서, 헤어지기 위해서 벌인 일이라고 생각하지요. 시작은 좋은 의미였으나 오해가 생기고, 오해를 풀기도 전에 그들의 관계는 어려워지고 엇갈립니다.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사소한 장난같은 일이 너무 크게 벌어진 것 같기도 하고, 그녀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시험해보려는,사랑을 끝내려는 아주 불쾌한 일인 것 같기도 합니다.
타인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서 자신의 매력을 찾게되고 느끼게 되는 여자들의 심리를 흥미롭게 펼치면서
그 부분에 대한 정체성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연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그녀의 독백을 통해서 사랑에 대한 그녀의 정체성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또 다른 정체성의 의미일 수도 있겠지요. 책 표지에서 안 보이는 얼굴 부분은 과연 연인의 얼굴일까요? 익명의 남자 얼굴일까요? 아니면 정체성을 알지못하고, 찾지못하는 우리들의 얼굴일까요?
굳이 제목에서 말하는 정체성이 무엇인지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읽는내내 통념에 사로잡혀 이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제목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해석하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읽으면서 재밌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읽기전부터 난해할 것 같다는 편견을 가져버리는 저에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해주고, 밀란 쿤데라의 다른 작품을 또 읽고 싶게 만들었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밀란 쿤데라 이름만으로도 회피하시는 분들, 읽어보고 싶은데 어떤 책부터 읽어야 할지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이 책부터 시작해보시라고 추천드리고 싶어요.
저는 이 책을 통해서 밀란 쿤데라 전집, 정체성,동유럽소설등 어렵고 난해할 것 같은 단어들이 이제 조금씩 친근해지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