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소설의 제목은 ‘자기계발’이 아니고 ‘자기개발’인가. 검색에 따르면 ‘계발’은 인간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사상이나 인성 따위를 포함한 슬기나 재주를 일깨운다는 뜻이고, ‘개발’은 인위적인 교육(훈련)을 통해 어떤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의미이다. 차이랄 것도 없지만 굳이 구분을 하자면 계발은 잠재되어 있는 어떤 능력을 일깨우는 것이고, 개발은 훈련시키지 않았다면 없었을 능력을 발전 시키는 정도라고 한다면 맞겠다. 굳이 그런 해석을 갖다 붙이는 이유는 이 책에서 주인공이 ‘개발’ 하는 것이야말로 그야말로 쓸데 없는 훈련을 통해 도달한 경지이기 때문이다. 하나 덧붙여 이 소설에서 ‘계발’과 ‘개발’의 가장 큰 차이점을 구분하자면 누구를 위해 발전시키느냐의 문제이다. 나 아닌 사람들을 위해 ‘계발’ 시키는 삶에서, 나를 위해 ‘개발’ 시키는 삶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소설의 줄거리다.
누구를 위하여 삶을 울리나
자기계발이 사실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쓸모있는’ 부속품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은 이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자기계발의 신화가 말짱 허상이었다는 것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더이상 ‘성공하는 사람들의 습관’에는 관심이 없어지고, ‘미움’받더라도 자기 삶을 사는 용기 쪽을 택하기 시작했다. 이 책의 주인공 이부장은 표지의 흐리멍텅한 모습과는 달리 나름 대기업 부장이고 무려 임원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사람이다. 3년의 여유가 있긴 하지만 승진에 실패한다면 그 역시 옷을 벗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은 미국에 가 있는 딸과 부인을 위한 뒷바라지가 남아있다. 어떻게든 살아 남아야 하는 이유가 분명하다면 자기계발을 해야할 이유 또한 분명해진다. 사실 그가 살아 남은 이유는 단순하다. 그저 잘 참았다는 이유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동기들 다 빠져 나갈 때 그저 묵묵히 자리를 보전했다.
딱히 눈에 띄는 선수도 아니었고, 이렇다 할 특징이 있는 선수는 더더욱 아니었다. 단지 그가 속한 팀의 그가 속한 포지션에 별다른 경쟁이 없었을 뿐이었다. (p.53)
퇴직의 기로에 서 있고, 가족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으면서 몸이 고장나기 시작하는 나이 40대. 이 부장은 중년남성을 대변하는 캐릭터이다. 그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나타났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만성전립선염’이다. 그는 민망한 자세로 엎드려 의사의 손가락이 항문으로 들어오는 수모를 감내해야 한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매주 의사를 보지 않고도 셀프 마사지를 할 수 있는 ‘아네로스’라는 기구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마저도 수치스럽기 짝이 없지만 혼자 주 2,3회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다행스럽다.
아네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문제는 아네로스라는 괴상하기 짝이 없는 도구로 마사지를 받다가 이 부장이 ‘오르가슴’을 느끼면서부터이다. 46년을 그저 잘 살아왔고, 남들도 다들 그렇게 고만고만하게 슬픔과 기쁨을 교차 시키며 산다고 생각했던 이 부장에게 처음 느껴보는 쾌락은 자신의 인생전체를 일거에 전복시킨다.
이전까지 이 부장의 세계는 아주 단순한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목표와 결과가 있었고, 목표를 향하는 거대한 기계는 그의 인내를 연료로 움직였다. 세상은 쓸모 있는 것과 쓸데없는 것으로 나뉘었고, 쓸모 있는 것이 아니라면 효율을 위해 버려 마땅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쓸모있는 것이 되어야만 했다. (p.71)
모든 것에 목적과 그에 응당한 결과가 있다고 생각했던 그에게 ‘오르가슴’은 도무지 지금까지의 삶의 방정식과 맞지 않는 것이었다. 이렇게 무목적성을 띠고 일방적이면서도 쾌락을 선사하는 비대칭적인 삶이 있었다니. 이 부장에게는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진다. 그저 욕조에 앉아 자신을 위해 반신욕을 하는 삶을 사는 것만으로도 어색할 지경인데, 몇 단계를 뛰어 넘은 그의 삶은 기쁘게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유사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찾다가 오프라인 모임에서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만난다. 그 모임 때문에 그의 삶에 작은 파문이 생기고 묘한 결말을 향해 이야기는 진행된다.
특이한 소재이기도 하지만 내용이나 구성도 흥미롭다. 특이한 점은 소설의 소제목이 바로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가지 습관’에서 나온 7가지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제목만 보면 깜빡 속기 좋다. ‘자기의 삶을 주도하라’,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 ‘윈윈을 생각하다’, ‘끊임없이 쇄신하라’ 같은 주제는 사회적 성공의 요건이기도 하지만 개인적 삶의 성공 요건이라고 보기에도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시선이 외부에서 내부로 옮겨가는 과정을 표현하기에 적절하다. 여기에 덧붙여 작가는 끊임 없는 자기개발(?)을 통해 오르가슴에 도달한 이 부장의 삶이야 말로 이 시대의 ‘정석’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