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사이를 가로지르며 정체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세계적인 작가 다와다 요코의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삿된 허위를 벌거벗기는 사나운 진실
우리 시대의 카프카,
다와다 요코가 이야기하는 모어(母語) 바깥으로의 여행,
편견과 혐오를 깨뜨리는 매서운 시선
남자는 조용히 가죽 트렁크를 툇마루에 놓고 손목시계를 풀어서 물기를 털듯이 두세 번 세차게 흔들어 보이더니 빙긋 웃으며 “전보 받으셨어요?” 하고 말했다. 미쓰코가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듯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뭔가를 생각하듯이 인상을 쓰니, 남자는 좀 더 명랑한 말투로 “다로라고 불러 주세요. 본명으로 적당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좋은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서요.” 하고 이름을 밝혔다. -「개 신랑 들이기」에서
성룡은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착하게 보이지만 전문가의 눈으로 들여다보면 이상할 정도로 표정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뒤에 잔인함이 숨어 있어도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자 모두 입을 다물었다. 기분 나쁜 침묵이었다. 카타리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성룡은 아시아인이니 선천적으로 표정이 없고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냐고, 용기를 내서 말했다. 그리고 또 용기를 내서 덧붙였다. 내 친구 미치코라는 이름의 일본인도 표정이 없지만 그 뒤에 잔인함을 숨기고 있지는 않다고. -「페르소나」에서
“『개 신랑 들이기』는 카프카처럼 몽상적이고, 불가사의하며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는 작품이다.” -≪뉴요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 작품은 걸작이다.” -≪뉴욕 타임스≫
“다와다 요코의 파격적이고 유머러스하고 초현실주의적 감각을 보여 준 작품.” -≪커커스 리뷰≫
“다와다 요코의 두 소설은 언어에 대한 작가만의 고유한 발상을 실현한 계기, 즉 이주(移住)에 대한 이야기로 읽힌다. 「개 신랑 들이기」가 떠나기 전의 이야기라면, 「페르소나」는 떠난 이후의 이야기 같다.”
-「옮긴이의 말」에서
일본어와 독일어로 글을 쓰는 이중 언어 작가이자, 기존의 디아스포라 문학과 세계 문학의 범주를 넘어서 초문화적이고 혼종적인 문학 세계를 보여 주며 ‘번역 행위’를 창작의 화두로 삼아 문화적 소통의 의미와 가능성을 탐구해 온 다와다 요코는 그동안 일본과 독일 및 세계의 주요 문학상을 석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최근 노벨 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언급되고 있다. 이번에 민음사에서 소개하는 다와다 요코의 『개 신랑 들이기』는 일본 최고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자, 작가의 문학적 원류를 들여다볼 수 있는 두 작품(「개 신랑 들이기」와 「페르소나」)이 수록된 매우 중요한 소설집이다.
일찍이 스무 살 무렵 일본에서 대학교를 마치고 독일로 건너가서 생업과 학업, 글쓰기를 병행해 온 다와다 요코는 독특하게도 모국어보다 독일어로 먼저 작품을 발표하며 독일에서 일본으로, 이른바 외국어에서 모국어로 역행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때부터 이중 언어 작가이자 번역의 영역을 혁신하고 확장하는 문학가로서 크게 주목받은 다와다 요코는 1991년 군조신인문학상의 수상을 기점으로, 지난 삼십여 년 동안 삼십여 권의 소설과 시, 에세이를 지속적으로 발표하며 오늘날 가장 중요한 세계 문학의 기수로서 자리매김했다. 또 다와다 요코의 독보적 위상은 필연적으로 국가와 국가 사이의 경계, 문화와 문화 사이의 경계, 언어와 언어 사이의 경계 등 명확이 구분할 수 없는 모호한 시공간을 펼쳐 보이며 탈영토적이고 탈경계적인 글쓰기로 이어지는데, 이것은 곧 작가의 창작 자체가 민족 문학의 해체, 디아스포라적 실험,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의 실천이라는 점을 방증한다.
『개 신랑 들이기』의 표제작, 「개 신랑 들이기」는 부동산 붐이 일었던 1990년대의 일본 도쿄도 다마구, 이른바 신도시 개발 지역을 무대로 삼아 설화적 상상력과 초현실적 분위기 아래, 각종 사회 문제(빈부 격차, 여성 차별, 한 부모 가족 차별, 성 소수자 차별 등)와 현대의 소외를 신랄하게 담아낸 선구적인 작품이다. 새로 들어선 아파트 단지(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의 장소)의 건너편, 옛 동네가 그대로 남아 있는 낙후 지역(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위협하는 장소)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미쓰코 선생님은 코 푼 휴지로 엉덩이를 닦으면 기분이 좋다느니, 먼 옛날에 어느 충직한 개가 볼일을 본 공주의 엉덩이를 핥아 주는 임무를 해냄으로써 마침내 배필이 되었다느니, 하는 기묘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괴상한 고약을 만들어 붙이고 학생들 앞에 반나체로 나타나는 등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소문’을 몰고 다니는 독신 여성이다. 그러던 어느 날, 분명 사람이지만 어딘가 개처럼 행동하는 ‘다로’라는 남성이 불쑥 찾아오고, 점차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이렇듯 「개 신랑 들이기」는 각각의 언어와 문화 사이에 자리한 간극을 탐구하듯, 한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가로지르는 수많은 균열을 집요히 해부해 내는 다와다 요코의 문제의식을 여지없이 보여 주는 소설로, 훗날 동일본 대지진의 참상과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온갖 금기를 고발하는 작가의 대담한 문학 세계를 예고하고 있다.
한편 같이 수록된 「페르소나」는 독일에서의 이주 생활을 먼저 독일어로 구상해 낸, 즉 다와다 요코의 이중 언어 글쓰기의 전범을 이루는 결정적인 작품이다. 동생 가즈오와 함께 독일에서 유학 중인 미치코는, 어느 날 독일 친구인 카타리나로부터 이상한 사건을 전해 듣는다. 카타리나와 함께 정신 병원에서 근무하는 김성룡이라는 한국인이 레나테라는 환자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미치코는 평소 한국인 슈퍼마켓에서 종종 마주치던, (같은 아시아인이 보기에) 선량한 김성룡의 얼굴을 떠올리며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다. 중대한 사안인 만큼 레나테의 고발은 일파만파로 번져 나가고, 진상 규명을 위해 대책 회의까지 열린다. 그러나 레나테가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시기에 김성룡은 발트해로 휴가를 떠나 있었고, 결국 모든 점에서 이치에 맞지 않는 사건임이 밝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 사람들(유럽인들)은 동양인들이란 늘 무표정하므로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다고, 그래서 어떤 잔인성을 숨기고 있더라도 눈치챌 수 없노라고 편견 가득한 말과 소문을 쏟아 낸다. 이 같은 상황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끝내 미치코는 독일 생활 자체를 회의(懷疑)하기에 이르고, 차츰 격렬한 정체성의 혼란에 사로잡히게 된다. 「페르소나」는 작가의 문학 경력 중 거의 앞에 놓이는 초기작으로, 지난 삼십여 년 동안 다와다 요코가 개척해 온 문학 역정의 맹아가 깃들어 있는 소설이다. 따라서 다와다 요코의 문학 세계를 좀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한다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페르소나
개 신랑 들이기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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