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완 장편소설 『아찰란 피크닉』이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아찰란 피크닉』은 입시공화국으로서의 대한민국에 대한 한 편의 우화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유치원부터 스펙을 쌓는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그린다면 이 소설에서와 같은 디스토피아가 완성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십 대들의 질투와 불안, 우정과 열정에서 비롯된 이야기는 무채색 디스토피아가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무슨 색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폭죽 같다.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는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어른들의 가치관을 내면화하며 경쟁에 과몰입해 있지만, 이들은 아직 어른은 아닌 탓이다. 2099년 이후 미래의 어느 시점, 1년의 절반은 먼지 경보가 발령되는 도시국가. 『아찰란 피크닉』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일곱 명의 아이들이 펼치는 인생을 건 입시형 탈출기다.
■ 두려운 곳, 아찰라
아찰라의 정식 명칭은 아찰라 공화국. 인구 200만 명의 내륙 도시 국가로 13개의 자치구와 특별자치구인 헤임으로 구성돼 있다. 아찰라 공화국은 몬스터 타운인 아찰의 거리와 상류층만이 거주 자격을 얻는 헤임으로 사실상 양분돼 있다. 헤임은 피라미드로 이뤄진 쾌적한 낙원이지만 아찰의 거리는 먼지와 어둠으로 채워진 지옥이다. 장벽으로 둘러싸인 이 도시의 사람들은 언젠가 자신도 아찰로 변할 거라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간다. 몸속에 종양이 자라며 아찰이 되고, 아찰이 되면 곧장 격리되어 아찰들만이 사는 곳으로 간다. 그곳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곳에 대한 얘기는 공공연한 비밀에 부쳐진다. 아찰라는 두려운 곳, 벗어나야 하는 곳, 그러나 애잔한 곳, 벗어날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 회색 코트를 입은 괴물, 아찰
아찰라 시민 중 아찰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다. 모두 언젠가는 아찰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이 아니더라도 가족, 혹은 친구 중 누군가는 아찰이 된다. 아찰라의 시민은 언제나 자신 몸에 있는 종양의 숫자를 세며 아찰이 되는 날을 초조하게 기다린다. 누군가가 언젠가는 아찰이 될 거라는 사실을 모른 척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현관의 옷걸이에 사람 숫자대로 걸린 회색 코트를 볼 때마다 아찰이 되어 그 옷을 입고 집을 떠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찰은 사람의 기억을 가진 괴물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찰이 될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아찰에 대한 연민을 품고 있다.
■ 오직 공부만이, 오직 경쟁만이
아찰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부터 지배당하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가 있다. 종평(종합 적합도 평가) 1등급을 받으면 헤임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찰의 거리에서 벗어날 수 있고, 따라서 아찰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아이들은 종평에 목숨을 건다. 성적을 잘 받기 위해 극단적으로 노력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기괴하면서도 가엾다. 성적은 물론 말투, 외무, 인성 등 모든 것이 평가 대상이 되는 세상에서는 친구가 친구가 아니고 사랑도 사랑이 아니다. 부모가 부모가 아니고 자식이 자식이 아니듯. 하지만 어디에나 그렇듯 그들 사이에도 일탈적 존재가 있다. 우정도 있고, 사랑도 있다.
■일곱 명의 아이들, 일곱 개의 방황들
이 소설은 아찰라 공화국에 사는 일곱 명의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다. 아이들마다 처한 환경과 상황, 성적과 꿈이 다르다. 마음은 여리지만 스스로를 통제하는 데에는 가차없는 종평 3등 아란, 공부보단 소설에 더 빠져 있는 요제, 부모님의 감시 아래 몰래몰래 음악활동을 이어가는 네즈, 완벽한 스펙의 종평 1등 디본, 부모님이 아찰이 된 후 동생들을 돌보는 체육 특기생 카렐,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어딘가가 늘 불안해 보이는 종평 2등 히에, 자신이 아찰로 변하고 있음을 알게 된 이투…… 소설은 종평 마지막 관문인 피크닉이 열리기까지 열 달의 시간 동안 서서히 고조되고 뒤틀리며 극단적인 감정에 몰리는 아이들의 심리적 스펙트럼을 섬세하게 그린다.
■ 아이들은 어른을 비추는 거울
아이들이 주인공인 이 소설에서 어른은 대체로 무능력하고 무책임하며 부도덕하고 불성실하다. 어른의 자리는 실질적으로는 부재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볼 때 이 소설에는 아이들만 있고 어른은 없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고통과 절망, 선택과 방황은 곧 어른들의 절망과 방황을 되비춘다. 아이들의 가치관은 어른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므로, 아이들의 일그러진 감정 속에는 어른들의 왜곡된 욕망들이 자리한다. 『아찰란 피크닉』은 아직 사람으로 남고자 하는 아이들을 통해 이미 사람이기를 포기한 욕망들을 드러낸다.
■ 작가의 변신
오수완 작가는 2010년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로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0년 『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로 제16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고 장편소설 『탐정은 어디에』, 『족구의 풍경』 , 『켄』 등을 펴냈다. 오수완 작품을 관통하는 특징은 지적인 유희다. 그러나 이번 소설을 통해 독자들은 전혀 다른 색깔의 작가 오수완을 발견할 수 있다. 빈틈없이 설계된 ‘아찰라 공화국’에서 여전한 오수완을 만나게 되겠지만, 눈앞에 그려지는 생생한 이미지들과 일상의 표정에 감추어진 섬세한 감정에 대한 포착들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오수완을 만나게 될 것이다.
■ 작가의 말에서
아이는 괴물에게 여전히 사람의 마음이 남아 있음을 믿는다. 아이는 말한다. 우리는 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그러니 괴물이 되지 말라고. 사람으로 남아 있어 달라고. 이 소설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으려고, 사람의 마음을 지키려고, 괴물을 사람으로 되돌리려고 세계에 맞서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아이들일 수밖에 없었다.
■ 추천의 글에서
아란, 요제, 네즈, 디본, 카렐, 히에, 이투…… 당장이라도 손에 잡힐 것 같은 생생한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보다가 생각한다. 나라고 다를 수 있을까? 그리고 곧 알게 된다. 나 역시 아찰라에서 헤임의 빛나는 피라미드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피라미드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는 결코 내 표정을 볼 수 없다는 것을. -문지혁(소설가)
『아찰란 피크닉』은 어른들의 방식이 아닌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는 일곱 아이들의 여정을 그린다. 소설을 읽으며 이 아이들만은 어른들의 비관이 닿지 않는 곳에서 저마다 최대치의 어른이 될 수 있기를 자꾸 바라게 됐다. 이건 이미 어른이 되어 버린 내가 꾸는 꿈이고, 우리 모두가 잊어버린 용기에 관한 이야기다. -한소범(기자)
■ 본문에서
“학교에서는 키나 몸무게 같은 신체 요소는 종평에 아무런 영향도 안 준다고 하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이제껏 제7학교 졸업생 중에 종평 1등을 한 사람은 하나같이 키가 크고 얼굴이 잘생기거나 예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다른 학교 졸업생들도 마찬가지였다. 헤임에 들어가는 건 언제나 그런 사람들이었다. 젊고 아름답고 뛰어난 사람들. 무엇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사람들. 그 완벽에서 조금씩 점수가 깎여 종평의 서열이 매겨지는 것이다.” (15쪽)
“옛날 일은 잊어버리자. 이제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야지. 보조금과 복지 점수가 있잖아. 아찰이 나온 집은 보조금이 나온다면서. 세금도 덜 낵 전기와 물도 혜택이 있다던데. 제일 중요한 건 종평 점수가 올라가는 거야. 그러면 나도 히에나 디본 같은 애들과 경쟁할 수 있어. 엄마. 들어 봐. 어쩌면 내가 종평 1등이 될 수도 있어.” (33쪽)
“그러고 보니 오늘 아직 한 끼도 먹지 못했다. 왠지 비참하고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살이 빠지겠
군. 좋은 일이지. 하지만 오늘은 공부를 하나도 하지 못했어. 그건 나쁜 일이고. 필요한 일들을 몇
가지 했을 뿐인데 완전히 지쳐 버렸어. 공부는 어떻게 하지. 이제부터라도 해야겠지. 멈추면 안 되
니까.” (37쪽)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언제쯤이면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거지. 두려움도 초조함도 없이, 모르겠어. 내게 그런 날이 오기는 올까.” (37쪽)
“중요한 건 오로지 점수야. 무슨 수를 써서든 정답을 찾는 거야. 답을 하나씩 대입해 보든, 주사위를 굴리든, 정답의 빈도를 맞춰 보든,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든, 뭐든 상관없어. 답만 맞으면 되는 거야. 과정은 중요하지 않아. 결과가 중요해.” (221쪽)
“시험 시간은 제일 고독하고 제일 자유로운 시간이야. 시험 문제와 너밖에는 없어. 문제들을 다 무찌르고 나면 너만 남는 거야. 그럼 너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고, 다른 애들이 문제를 푸는 동안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거야. 그건 피라미드에 제일 먼저 올라가서 다른 애들이 네 발밑으로 기어 올라오는 걸 내려다보고 있는 것과 똑같은 거야.” (221~222쪽)
“얘는 꼭 인형 같아요. 생긴 것도. 행동하는 것도.” (222쪽)
“아찰라에서 사람은 바보가 되거나 악인이 되거나 장벽 밖으로 쫓겨나거나 아찰이 될 수밖에 없어. 아무것도 모른 채로 살면 바보가 되고 알면서도 분노하지 않으면 악인이 되지. 분노해서 뭔가 행동하려 하면 추방당하고 분노했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 끝내 아찰이 되는 거야. 아찰이 뭐라고 생각해? 그건 인간 존재의 광란이야. 정신이 미치는 광인과 신체가 날뛰는 광전사가 합쳐진 거라고. 아찰라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운명이 그것뿐이라면, 우리는 이곳에 머물러서는 안 돼.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가야 해. 더러운 먼지가 없는 곳으로, 언제 아찰이 될지 모르는 공포가 쫓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무작위로 주는 네 글자 코드 따위가 아니라 진짜 성과 이름을 쓸 수 있는 곳으로. 인간이 자신의 삶과 죽음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해. 우리는 거기서 살고 거기서 죽어야 해.” (226쪽)
“내게 피해가 없으면서 상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어?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 다 그렇게 경쟁하는 거니까. 모두 네가 했던 말들이야.” (2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