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출간된 시집 『나는 문이다』 새롭게 복간
스페인, 미국에서 번역되어 소개된
한국시의 자랑, 문정희의 대표 시집
■ 나는 문이다, 문이 아니다
오직 공포 한 마리가
처절한 짐승처럼
한 생명을 지키고 있으리라
-「거웃」에서
2007년 출간됐던 문정희 시집 『나는 문이다』가 2016년 민음사에서 새로 복간되었다. 『나는 문이다』는 영어, 스페인어로 번역되었으며 지금도 쿠바 등 세계 각지의 언어로 번역 작업 중에 있다. 이 시집에서는 문정희 시인 특유의 생명 의식을 곳곳에서 번뜩인다. 동시에 매순간 최대치로 존재하며 또한 최대한으로 질문하는 시인의 시적 태도가 오롯이 담겨 있는 시집이기도 하다.
시집에서 보이는 열렬한 사랑의 추구와 갈망은 ‘나는 문이다’라는 명제와 잘 들어맞는다. 반대로 스스로에 대한 냉철한 시선과 언명은 ‘문이 아니다’라는 부정문과 아귀가 맞다. “응”이라는 언어로 사랑의 체위를 갈구하나, 자신이 살았던 공간인 압구정을 향해서는 ‘도둑촌’이라 칭하며 멸시한다. 이처럼 문정희는 하나의 몸에서 나올 수 있는 최대한의 보폭을 시인을 보여 주며, 그 보폭을 널찍하고 동시에 까다로운 시적 언어의 영역 안에서 품고 있다.
■ 하늘 아래 내가 있다
나를 시인이라고 알지 마라
나는 글창녀니라
죄 없는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며
값싼 원고에 매달려 중노동으로 살아왔지만
그 순간 시인이 되고 싶었다
-「초대받은 시인」에서
시인은 어느 날 군인 출신 대통령에게 초대를 받는다. 아마도 엄혹했던 군사독재시절의 이야기일 것이다. 시인은 초청을 거부하는 것으로 본인의 시인됨을 증명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시인됨은 증명되지 않는다. 문정희 시인이 진정 시인으로 존재함은 대통령의 초대를 거절함으로써 스스로에게 돋아나는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해 낼 수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의연한 선비’나‘서툰 운동권 같은 폼’을 잡는 본인을 인지하며 또한 ‘은근히 그것을 선전하고/ 으스대고 싶어 전신이 마구 가려’운 것조차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그것을 온몸을 긁는 것으로 표현하고 시화한다. 이처럼 이 시집에서 몸은 시의 모티브와 메타포가 되고 있으며 어쩌면 시 자체가 하나의 몸일지도 모른다. 2007년판 자서에서 시인은 “나는 문이다”라고 선언했다. 2016년에 시인은 다시 “하늘 아래 내가 있다”라고 한다. 독자는 『나는 문이다』의 문을 열고, 하늘 아래 오롯이 서 있는 하나의 몸을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