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16년 5월 11일
ISBN: 978-89-374-6341-9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5x225 · 724쪽
가격: 15,000원
시리즈: 세계문학전집 341
분야 세계문학전집 341, 외국 문학
퓰리처 상을 두 번 수상한 미국 현대문학의 전설 노먼 메일러
실제로 체험한 전쟁 경험을 통해 써 내려간 리얼리즘 문학의 정수
군대 조직의 일상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심도 깊게 고발하는 소설
▶ 잔인하고, 고통스러우며, 놀라울 만큼 사색적인 소설.—《뉴스위크》
▶ 2차 세계 대전에 관한 최고의 소설.—《타임》
1권
1부 쇄도 7
2부 점토와 틀 71
2권
3부 식물과 유령 7
4부 항적(航跡) 479
작품 해설 493
작가 연보 511
헤밍웨이, 스타인벡의 전통을 잇는 리얼리즘 문학의 대가 노먼 메일러
그의 문학적 시초를 엿볼 수 있는 생생하고 탐구적인 작품
퓰리처 상 2회 수상에 빛나는 미국 현대 문학의 ‘저널리스트’ 노먼 메일러의 데뷔작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1, 342번으로 출간되었다. 1948년 발표한 이 소설은 메일러가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직후 참전한 2차 세계 대전에서 겪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전쟁 소설이다. 전쟁 당시 상황과 군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상들을 꾸미지 않은 날것의 문장으로 생생히 묘사하며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통해 미국 사회, 더 나아가 인간 사회에 대한 통찰을 담은 이 소설은 대중과 평단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출간된 지 삼 개월 만에 20만 부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연속 62주 동안이나 《뉴욕 타임스》의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타임》은 이 소설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견주었고, 《뉴욕 타임스》는 “2차 세계 대전에 관한 가장 인상적인 소설”이라고 찬사를 보냈으며, 《뉴스위크》는 메일러를 일컬어 “이론의 여지없이 중요한 작가”라고 평가했다. 1998년에 《모던 라이브러리》는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를 100대 영문 소설 가운데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 작품으로 문단의 혜성처럼 떠오른 노먼 메일러는 1967년 펜타곤에서 있었던 베트남 반전 시위를 소재로 한 『밤의 군대들』(1968)로 퓰리처 상과 전미 도서상을 수상했으며, 1979년 출간한 『처형인의 노래』로 두 번째 퓰리처 상을 수상했다. 반세기가 넘도록 활발하게 활동하며 미국 사회를 심도 깊게 조명해 온 노먼 메일러, 그의 문학적 단초이자 작가라는 타이틀을 준 작품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는 21세기를 훌쩍 넘긴 현재, 아직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큰 울림을 주고 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ㅡ 문학과 전쟁, 떼려야 뗄 수 없는 ‘고발 문학’
2차 세계 대전이 종결되기 일 년여 전, 이제 막 가정을 꾸린 스물두 살의 청년 노먼 메일러는 위대한 전쟁 소설을 쓰리라는 야심을 가지고 군에 입대한다.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의 오십 주년 기념 판본의 서문에서, 자신은 “이미 대학 시절에 25만 단어 이상의 글을 썼을 만큼 글쓰기를 좋아했고 문학에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라고 메일러는 회고한다. 하버드 대학 졸업생으로서 장교가 될 수도 있었으나, 그는 사병으로 입대하는 것을 선택한다. 장교가 될 경우 전투를 제대로 경험할 수 없으리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기초 군사 훈련을 받은 후,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미군의 필리핀 탈환 작전에 투입된다. 이때의 경험은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재료가 된다.
메일러는 제대 후 아내와 함께 파리로 건너가, 톨스토이의 작품들과 당시 프랑스에서 전개되었던 실존주의 사상 운동의 영향 아래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1948년, “2차 세계 대전이 종결된 지 삼 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러 사람들이 모두 전쟁의 실체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장편 전쟁소설을 읽을 준비가 되었을 때”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를 출간한다. 소설 속에서 전쟁터에 던져져 전쟁 기계로 내몰린 병사들은 때론 자신이 개성과 의지와 존엄을 가진 인간임을 망각한다. 미군이 상륙 작전에 돌입하여 결국에는 일본군을 궤멸시키고 작전을 승리로 이끄는 내용임에도, 이 소설을 지배하는 것은 낙담과 무력감, 패배와 좌절의 정서다. 그리고 이것은 이 소설이 내는 반전(反戰)의 울림과 공명한다.
전쟁의 포성이 아닌, 전쟁을 치르는 인물 내면의 목소리에 주목한 작품
이 소설의 구성 면에서 독특한 점을 지닌다. 시간 순으로 이루어지는 서사 사이에 영화의 플래시백 기법과 비슷한 장치인 ‘타임머신’과 병사들의 연극 같은 대화로 이루어진 ‘코러스’가 삽입되어 있다. ‘타임머신’은 주요 인물들의 내면과 과거 삶을 조명하며, 이를 통해 그들의 현재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코러스’와 ‘타임머신’은 또한 2차 대전 발발 전후 미국의 사회상에 관한 실마리를 제공하는데, 그 면면에는 전쟁 특수를 반기는 자본가, 우익의 반공주의 선전 활동, 반유대주의, 노조 탄압, 실업자와 부랑자들, 인종차별 속에서 출세를 꿈꾸는 이민자, 억압적인 가부장, 방황하는 젊은 지성들이 있다. ‘코러스’에서는 배식, 여자, 교대, 제대 등 병사들의 가장 현실적인 관심사가 날것 그대로 전달된다. 이를 통해 메일러는 단지 전쟁의 끔찍한 순간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 투입된 한 사람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조망하며, 전쟁이 한 평범한 인간을 밑바닥까지 떨어뜨리는가를 선명하게 보여 준다.
또한 장편 전쟁 소설임에도 대규모의 교전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배경음으로 들려오는 간단없는 포성과 총성, 커밍스 장군의 책상 위에 쌓이는 전황 보고서, 죽은 혹은 죽어 가는 병사의 모습에 대한 지극히 냉정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직접적인 전투 장면을 대신한다. 오히려 며칠간의 노동을 헛수고로 만들어 버리는 폭우, 온몸을 짓누르는 더위, 위협적인 정글 등과의 지난한 싸움이나 전투를 준비하기 위한 끝 모를 노동과 행군의 과정, 인간의 적나라한 야심과 욕망, 인물들 간의 갈등과 복잡한 심리가 중점적으로 다뤄진다. 병사들은 이 지배하는 군대 조직에서 계급 불평등과 억압에 시달리며, 명령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파블로프의 개’가 될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압도적인 자연력, 불평등한 군대 조직은 누군가에게는 기회이자 자신의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되지만, 대부분의 병사들에게는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은 족쇄가 된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부여된 한계 앞에서 수치심과 절망감을 느끼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공격성을 내면에 키운다. 그것은 때로 불평이나 욕설로 어설프게 표출되고, 때로는 무력한 후퇴와 굴복으로 불발되며, 때로는 죽음이라는 가장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다.
■ 줄거리
2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일본군이 점령한 남태평양의 작은 섬 아노포페이에 커밍스 소장이 이끄는 미군이 상륙 작전을 감행한다. 사병 한 명이 전투 중 공포에 질려 참호 밖으로 뛰쳐나갔다가 폭탄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소대원들은 그제야 전쟁의 참상을 현실로 느끼기 시작한다. 본국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기억과 끔찍한 전쟁을 벌이는 일상 속에서 이들은 서서히 공포와 절망에 사로잡힌다. 한편 전쟁을 작전의 성공과 실패로만 판단하는 커밍스 소장은 전투가 장기화되자 압박감을 느끼고 상황을 타개하고자 무리하게 보토이 만 상륙 작전을 구상한다. 마침 자신에게 반기를 든 헌 소위의 거취를 놓고 고민하던 커밍스 소장은 희생을 염두에 둔 이 무모한 임무에 그를 투입시킨다.
■ 본문 중에서
그 순간, 분노와 고통이 미처 작동하기 전의 순간, 그는 온몸이 마비된 채 심장만 미치게 고동치는 것 같은 흥분을 느끼면서, 자신의 인생이 얼마간 달라졌으며 어떤 일들은 앞으로 결코 똑같이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1권, 70쪽
토글리오는 슬프고 아련한 기분에 더욱 젖어 들었다. 언젠가 아내가 크리스마스트리를 손질하던 모습이 떠오르자, 눈물 한 방울이 그의 살찐 볼 위로 흘러내렸다. 그 일이 분 동안, 그는 전쟁이나 폭우 혹은 모든 것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1권, 174쪽
빌어먹을 로스 새끼, 보초 근무 중에 잠이 들면 어쩌자는 거야? 브라운은 생각했다. 우릴 다 죽게 만들겠다는 건가. 아무도 그런 짓을 할 권리는 없어. 동료들을 저버리는 놈은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어.—1권, 202쪽
그에게는 영웅이 되겠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다. 영웅이 되면 뭔가 엄청난 보상을 받아 생계의 부담을 덜고 어머니와 자신을 어렵지 않게 부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훈장을 잔뜩 달고 돌아가서 여자 친구가 감탄 어린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중략) 그 꿈속에는 너무도 무거운 짐을 지고 너무도 먼 거리를 달리는 데서 오는 옆구리 통증 같은 것은 없었다.—1권, 226쪽
“전쟁이 체스보다 복잡하지. 그러나 결국은 다를 게 없네.”—1권, 302쪽
전쟁이란 권태와 진부함, 규칙과 절차로 점철되는 것이지만 거기에는 적나라하고 떨리는 열의가 있었고, 그곳으로 떠밀린 사람들을 깊숙이 연루시켰다. 인간의 깊고 어두운 온갖 충동, 고지 위에서의 희생, 밤과 잠의 들끓는 욕망, 그 모든 것들이 날카로운 비명을 울리며 산산이 부서지는 포탄과 인간이 야기한 천둥과 번개 속에 담겨 있는 것 아니겠는가?
—2권, 232쪽
비참함, 권태로움, 예기치 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공포감…… 온갖 일들이 벌어지고 시간은 흐를 테지만, 그들에게는 희망도 기대도 없었다. 낙담과 우울의 정서가 먹구름처럼 모든 것을 뒤덮을 뿐이었다.—2권, 46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