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꿈을 이룰 수 없는 시대에 꿈을 강요당하는 젊은이들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16년 3월 25일
ISBN: 978-89-374-3269-9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45x215 · 296쪽
가격: 17,000원
발행일 2016년 4월 20일 | 최종 업데이트 2016년 4월 20일 | ISBN 978-89-374-3270-5 | 가격 11,900원
성공해라, 가정을 이뤄라, 사회 변혁까지 책임져라…
소망을 성취할 수 없는 시대,
아직도 젊은이에게 모든 걸 맡기려고 하는가?
말뿐인 희망 고문을 그만두고,
차라리 젊은이를 단념시켜라!
한때는 꿈을 이룰 수 있는 시대였다. 모두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경제 성장에 취해 더 원하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었다. 황금시대의 주역이었던 젊은이는 방황하며 혁명을 도모하기도, 대기업에 입사해 가정을 꾸리기도 했다. 그때는 모든 게 가능했고 어떠한 목표든 마음만 먹으면 이룰 수 있었다. 그러다가 모든 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사회 변혁이나 고뇌는 사치가 됐고, 취직과 결혼, 평범함 삶조차 가닿을 수 없는 꿈이 됐다. 경제 성장이 멈춘 자리에서 모두가 길을 잃고 말았다. 사회는 여전히 “노력하라, 꿈을 가져라, 하면 된다.”라고 떠들어 대지만 실상 선택할 수 있는 건 냉엄한 인정 투쟁과 불투명한 미래뿐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에게 계속 허황된 꿈만 꾸게 할 것인가, 아니면 꿈을 이룰 수 세상을 제공할 것인가? 더 나은 미래는 세대를 넘어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젊은이에게만 지나치게 많은 걸 기대하지 마라. 그들을 꿈에서 깨어나게 하라! 현실과 희망의 격차로 고통스러워하는 ‘희망 난민’은 바로 우리 사회의 문제다.
한국은 희망 난민 수용소가 되고 말 것인가 -한국어판 서문
당신은 희망 난민입니까 -머리말
1장 무너진 일본, 희망은 공동체?
1-1 견고한 사회에서 말랑말랑한 사회로
1-2 희망은 공동체
1-3 여행하는 커뮤니티로 모여드는 젊은이들
2장 여행의 종언과 새로운 단체 여행
2-1 젊은이, 여행, 현대적 불행
2-2 여행의 끝과 신단체 여행
2-3 피스 보트의 역사
3장 피스 보트의 비밀
3-1 역사를 다시 쓰는 피스 보트
3-2 피스 보트를 선택한 이유
3-3 피스 보트의 구조
3-4 꿈을 이어 주는 피스 보트 센터
4장 자기 찾기의 유령선에 오르는 젊은이들
4-1 62회 피스 보트 크루즈의 기본 정보
4-2 피스 보트에 승선하기 전의 젊은이들
4-3 승선 동기와 피스 보트에 거는 기대
4-4 현대적 불행과 자기 찾기의 유령선
5장 르포, 피스 보트
5-1 세계형·문화 축제형·자기 찾기형·관광형
5-2 배에 난 구멍, 화내는 어르신, 우는 젊은이
5-3 9조 댄스를 추는 젊은이와 내셔널리즘
5-4 세계는 배경에 불과하다
5-5 생각으로 실현하는 세계 평화
5-6 모형 정원에서 노니는 온화한 젊은이들
5-7 피스 보트가 남긴 것
6장 단념의 배
6-1 끝나지 않는 피스 보트(세계형·문화 축제형)
6-2 모라토리엄의 종료(관광형)
6-3 끝없는 자기 찾기(자기 찾기형)
6-4 단념의 배, 피스 보트
7장 그러니까 당신도 단념하라
7-1 작은 공동체 안으로 모이는 젊은이들
7-2 안식처에서 꿈을 단념하다
7-3 사다리가 없는 나라에서 태어난 우리들
후기
감사의 말
주
참고 문헌
해설 혹은 반론 -혼다 유키
도쿄 대학교 학생이 정리한 깔끔하지 못한 노트
25세 젊은 사회학자가 치밀한 조사와 분석, 유머 넘치는 문장으로 완성한 문제작. -《아사히 신문》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젊은 사회학자의 충격적 데뷔작. -오사와 마사치(사회학자, 전 교토 대학교 교수)
『희망 난민』은 다양한 선행 연구와 각종 데이터를 비판적으로 살피면서 피스 보트라는 폐쇄적 공간의 독특한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해 준다. -혼다 유키(사회학자, 도쿄 대학교 교수)
■ 거품처럼 무너진 사회, 젊은이에게 남은 희망은 공동체?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로 한국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데뷔작 『희망 난민』이 민음사에서 출간됐다. 이 책은 저자가 사회학을 선택한 이래 줄곧 천착해 온 ‘젊은이 문제’를 심도 있게 파고든 첫 결실이다. 그는 도쿄 대학교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 석사 논문으로 제출한 연구물을 바탕으로 『희망 난민』을 세상에 내놓았고, 주요 언론은 물론 학계와 대중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특히나 이 책 끝부분에 붙은 도쿄 대학교 교수 혼다 유키의 냉철한 「해설 혹은 반론」은 ‘희망 난민’을 둘러싼 논쟁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한편 『희망 난민』이 화제에 오른 건 국제 NGO 단체 ‘피스 보트’(세계 평화 실현하는 세계 일주 크루즈)를 통해 현대 일본의 젊은이 문제를 절묘하게 규명해 냈기 때문이다. 『희망 난민』이 출간될 당시만 해도 젊은이 연구는 학력, 노동, 범죄, 서브컬처 등의 문제와 얽혀 이뤄져 왔을 뿐, 세계 평화나 환경 보호를 부르짖는 NGO 단체 등 사회 운동의 차원에서는 좀처럼 다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껏 젊은이는 사회 변혁의 주체로 받아들여져 왔고, 자기 찾기를 위한 방황은 당연한 미덕으로 간주돼 왔다. 하지만 저자는 근대 이후 경제 성장이 멈춰 선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쏟아지는 막중한 기대에 위화감을 느낀다. 열악한 노동 환경과 불투명한 미래의 기로에서 외딴 섬으로 변해 가는 젊은이들을 위로해 주는 돌파구로서 자주 거론되는 새로운 공동체와 사회 운동 커뮤니티. 저자는 이런 것들이 오늘날 ‘젊은이 문제(빈곤과 고독)’를 해소해 줄 만병통치약처럼 거론되는 사회 분위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희망 고문을 재생산하고 꿈만 좇게 하는 공동체가 노동 시장의 변두리에 놓인 젊은이들에게 어떠한 혜택을 줄 수 있을까? 피스 보트가 제공하는 세계 여행과 사회 변혁을 요구하는 구호는, 현재 젊은이들의 목을 조이는 빈곤과 외로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저자는 졸업, 취직, 결혼 등으로 이어지는 근대적 인생 경로에서 제 기능을 상실한 통과 의례와 자아성찰의 과정을 되짚어 보며, 오늘날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공동체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친다. 한 사회의 축소판이자 더 나은 미래를 요구하는 피스 보트 커뮤니티에서 114일 동안 집요하게 파고든 현장 조사 끝에 저자가 마주한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 희망 난민의 시대, 당신은 안녕하십니까?
분명 우리는 한 나라의 총리든, 가수든, 모델이든, 야구 선수든, 변호사든, 사장이든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무엇이든 될 수 있다.”라는 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영역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사실 ‘누구든지’ 꿈을 이룰 수 있는 건 결코 아니다. 꿈을 좇는 건 젊은이의 특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데 끊임없이 꿈만 좇다가 피폐해진 30대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은 그 혹은 그녀를 책임질 수 있는가? 뭐라고, 그건 자기 책임이라고?
(……) ‘경제 성장을 지속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 ‘회사에 취직하면 평생 안심’이라는 이야기를 모두들 믿지 않게 된 시대에, 우린 사회는 물론 자신도 변하는 존재라는 인식을 하며 저마다 끝을 알 수 없는 자기 찾기를 계속하고 있다. ‘파랑새 증후군’에 빠진 것처럼 우리는 현재 생활과 다른 선택지가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따라서 젊은이들이 희망 난민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 이 책의 주장은 “젊은이여, 단념하라.”가 아니라 “젊은이를 단념시켜라.”라는 데에 강조점이 있다. 이것은 내가 ‘단념하지 못하는 젊은이’가 아니라 ‘단념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 구조를 문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졸자 공채를 통해 사회와 노동 시장을 재생산해 왔다. 지금까지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고, 종신 고용과 연공서열 제도를 통해 풍족하고 안정된 삶을 보장해 왔다. 하지만 끝없는 경제 성장을 전제로 만들어진 이 구조는, 버블 붕괴와 세계적 불황 앞에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전 국민이 대학에 진학하는 와중에 일자리가 급감하기 시작했고, 자본가는 불안정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정규직을 대폭 줄이는 한편 비정규직을 양산해 냈다. 결국 지난 세월 동안 진리처럼 받아들여져 온 ‘좋은 대학에 가면 좋은 직장을 얻고, 풍족한 가정을 꾸릴 수 있다.’라는 인생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이때 사회로 내던져진 젊은이들은 좀처럼 꿈을 이룰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 놓이게 됐고, 직장은 물론 자아실현의 토대마저 빼앗기게 됐다. 경제 고도성장기엔 정치 운동에 나서고, 세계를 떠돌며 자아 성찰을 하더라도 언젠가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 돈을 벌고 자기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물질적 성공은 고사하고 존재를 뿌리내릴 수 있는 직장, 가정 등 공동체 자체를 잃게 됐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호황기에 맞춰 움직이고 있다. 여전히 “하면 된다, 노력하라, 꿈을 좇아라!” 온갖 응원으로 현혹하고 있지만, 정작 젊은이가 선택할 수 있는 미래는 냉엄하기만 하다. 그래서 성인이 된 젊은이들은 끝없는 자기 찾기, 세계 여행이나 사회 운동이 마련해 주는 자아실현에 경도된다. 취직이나 결혼, 즉 직장과 가족 공동체를 이룰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늘날 젊은이들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장소’는 그곳뿐이기 때문이다. 지난날까지 ‘정상적인 삶’이라 여겨져 온 궤도에 올라탈 수 없게 된 젊은이들은 무한정한 통과 의례 과정(혹은 꿈)에 갇혀 ‘희망 난민’이 되고, 결국 ‘지금 이곳에’ 살아남기 위해 인정과 승인 욕구를 채워 주는 공동체에 안주하고 마는 것이다. 오늘날 ‘피스 보트’와 같은 사회 운동 공동체는 물론, 극우 단체나 사이비 종교 단체마저도 ‘희망 난민’을 위로하는 기능을 수행하며 젊은이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사회 구조 자체가 젊은이를 자립한 존재로 이끌 수 없다면, 자기 계발을 강요하는 담론과 그럴싸한 외양을 지닌 ‘새로운 공동체’는 사회와 개인을 개선할 수 없다. 그곳은 단지 젊은이들의 외로움과 승인 욕구만 어루만질 뿐, 미래의 빈곤과 냉혹한 현실까지 껴안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노동 시장의 외곽에 위치한 공동체가 위안과 단념의 기능을 넘어 사회 변혁의 구심점이 될 수 있을까? 저자는 이 점을 회의적으로 평가하며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우리 사회와 각종 문제들은 젊은이만의 몫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전체의 것이니 말이다.
■ 사다리가 없는 나라, 한국은 희망 난민 수용소가 될 것인가?
일본 내각부가 2013년에 실시한 「일본과 여러 외국 젊은이가 지닌 의식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젊은이는 일본의 젊은이보다도 훨씬 더 ‘희망’을 품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13세부터 29세까지의 젊은이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이지만, 한국에서는 젊은이의 42%가 ‘희망이 있다.’, 44%가 ‘굳이 말해야 한다면 희망이 있다.’라고 대답하였다. 한편 일본에서 ‘희망이 있다.’라고 대답한 젊은이는 불과 12%, ‘굳이 말해야 한다면 희망이 있다.’라고 대답한 젊은이도 49%에 머물렀다.
젊은이 대부분이 ‘희망’을 지닌 한국은, 언뜻 보면 일본보다 멋진 나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의 논의에 맞춰 생각해 보면, 그저 ‘희망’만 있는 사회라는 건 사실 매우 살아가기 힘든 사회라는 뜻이기도 하다. 만약 ‘희망’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이 충분히 마련돼 있다면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한국은 청년 실업률이 높은 데다 좋은 학력을 갖추지 못한 젊은이에겐 더없이 가혹한 사회다.
(……) 한국 젊은이들의 총 86%가 ‘희망이 있다.’라고 대답한 것은, 아직 한국이 희망을 ‘필요’로 하는 사회라는 점을 말해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젊은이의 희망을 실현케 하는 환경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일본보다 훨씬 많은 ‘희망 난민’이 생겨나고 말 것이다. ―본문에서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어떠할까? 저자가 분석한 대로(한국어판 서문) 한국은 일본보다 희망이 넘쳐 나는 나라다.(일본 내각부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젊은이들은 일본이나 스웨덴의 젊은이들보다 훨씬 희망을 품고 있다.)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된 일본에 비해 한국은 확실히 젊은 편이며, 청년들 또한 여전히 가슴에 꿈을 품고 더 나은 미래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저자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더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희망 난민’은 말 그대로 현실과 희망의 격차로 고통받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희망으로 가득 찬 사회에,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엄청난 수의 희망 난민이 생겨나고 말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 지난 수년 동안 최악의 청년 실업률을 갱신하고 있으며 불안정한 노동 환경으로 ‘헬조선’, ‘흙수저’ 담론까지 대두하고 있다. 이렇듯 희망과 현실의 간극이 점점 더 벌어질수록 한국은 ‘희망 난민 수용소’가 될지도 모른다. 최근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소수자나 약자, 동물을 대상으로 한 범죄 및 인터넷을 통한 혐오 발언이 증가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대책 없이 꿈만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끝내 꿈을 성취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자존감을 회복하고 인정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혐오 단체나 사이비 종교에 쉽게 매료되기 때문이다. 이런데도 오직 젊은이에게만 책임을 전가하고, 희망찬 미래를 촉구할 것인가, 그들을 자기 계발의 늪에 빠뜨려 허우적대게 할 것인가? 더 나은 사회는 젊은이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전체가 함께 일궈 가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일본의 선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 사회는 ‘희망 난민’을 양산해 내지 않기 위해 미리 고민하고, 장차 행동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것은 젊은이들에게 꿈을 단념하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사회가 먼저 젊은이를 착취하려는 헛된 꿈을 단념하고, 더 나은 환경과 일터를 제공해야 한다. 꿈을 권하기에 앞서, 희망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을 달라! 한국을 ‘희망 난민 수용소’로 만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